우울함의 광산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머릿속에 넘실대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요즘의 나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 적으면서 부족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수행의 과정인 듯하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평생 곁에 둔 친구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어렴풋하게 생겨났다. 시간을 보내며 TV 프로그램, 영화, 책 따위를 보았다.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던 중 나는 특유의 ‘우울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실의 실험군과 대조군처럼 대중 속의 나를 발견했다. 가끔은 비슷했으며, 어쩔 땐 극명하게 달랐다.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 중에서



그것이 나쁘다거나, 바꾸고 싶을 만큼 싫다거나 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것. 내 의지대로 이곳에 태어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지금은 나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어렸을 때는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우울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스트레스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특유의 성질 때문에 멀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이상하다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믿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먼 길을 돌아왔다.


우울함을 가졌지만 자신감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연관 지어지지 않는 성격과 행동의 조합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하지만 사려 깊다면? 겁이 많지만 리더십을 가졌다면? 그런 사람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글을 쓰고 나면 잠시 그럴듯해 보이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는 글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부족하지만 꾸준함이 큰 가치라는 사실을 얼핏 느끼고 있다. 그래서 뭐라도 쓰면서 짧은 생각을 정리하고, 작은 아이디어를 여러 형식으로 확장해 보고 있다. 글로 표현되는 내 모습을 외부의 멋진 누군가에게서 끌어다 쓸 수 없다. 빈껍데기는 어리숙함의 가루 몇 알만 남길뿐이다. 깊은 광산의 끝으로 평생 파고들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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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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