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재밌는 방송 클립을 보게 되어서 생각난 것들을 써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성도님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 그런 고민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영상은 하단에 있습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패널과 목사님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 나름의 경험에 비춘 추가적인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방송에서 재밌었던 토크 부분 중에 부모님이 주신 용돈은 이미 부모님께서 십일조를 내고 나에게 주신건데, 내가 또 십일조를 내면 이중과세?? 그런 게 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스트들이 웃고 넘어갔지만, 저 역시 해보았던 웃지 못할 고민입니다.
▼ 용돈도 십일조 해야 할까? 이중과세? ㅋㅋ
(민수기 18장 26절)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레위인은 구약시대에 선택받아 민족의 제사를 모두 맡아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둬들인 십일조를 그들에게 주어 생활하게 하셨고, 그들이 받은 십일조에서 또다시 십일조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엄밀히 말하면 부모님이 용돈으로 주신 돈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결국에는 십일조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미리 10분의 1을 제하고 주실수도 있는데 주신 다음 다시 10분의 일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대체 왜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구약시대는 예수님 오시기 전의 시대입니다. 레위기, 민수기 등을 읽어내리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딱딱하다고 여기는 각종 '해라, 하지 마라' 등의 규칙이 잔뜩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죄 사함은 그런 구체적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의 표시 조차 구체적으로 십일조를 통해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온통 인간의 나약한 죄성을 나열합니다. 영원한 에덴 동산에서의 삶을 허락하셨는데 범죄하여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또 사랑하셔서 율법만 지키면 하나님께 용서받고 축복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그걸 지키지 못해 계속 고통받고 벌받고 회개하고 다시 범죄하고 무한 반복됩니다.
결국, 레위인에게 10분의 1을 제하고 재물을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신 이유도, 죄성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빛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려고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약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인 지금은 구약의 시대와 다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우리는 구원을 통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고, 율법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얻는 과정의 시작. 거듭난 이후의 삶의 시작. 다시 태어나 성장을 시작하는 영적 신생아)
율법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십일조를 안 해도 된다는 얘기일까요? 사실, 이제 우리는 죄사함과 구원을 받기 위한 방법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라는 것은 오직 각 사람 자신의 속 마음과 하나님 말고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구원 받았다 외쳐도 마음 속에 진정한 믿음이 없다면 구원받지 못한 삶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야고보서 2장 12절)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요약하자면, 구약시대에 제사 같은 절차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면, 이제는 마음의 진실성(믿음)을 보신다는 이야기 입니다. 과거(구약시대)의 현실적인 율법 대신 마음 속 양심이 그 율법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성도들에게 경건이 강조되는 이유는 마음의 훈련과 진실성을 보기 원하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헌금에 그런 진실함이 담겨있어야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구약시대보다 더 어려워진 방법일지도...)
잠시 십일조 이야기를 마무리 하기 전에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당첨금을 아직 찾기 전인데 회사에 출근을 했습니다. 직장 상사의 멸시와 업무의 스트레스 속에서 그 사람의 반응은 평소와 같을까요? 당첨금 찾을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 그에게는 웃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와 같지 않은 그의 초연함에 의문이 들 테고요.
굳이 비유하자면 구원의 기쁨은 로또에 당첨된 저 회사원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고, 세상의 지식과 물질의 유혹을 초월하도록 변화하게 됩니다. 천국 백성은 죽은 뒤에 천국에 가서 뿅! 하고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구원의 확신을 받고 마음의 진실한 기쁨이 생기면 우리를 데려가시기 전까지 마음을 연단(영적 성장. 악으로 부터의 초월)하며 각자의 달란트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과 그 기쁨에 대한 이해가 되셨다면,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는 쉬워집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10분의 1을 떼어 드린다는 생각이 아니라, 10분의 9를 거저 주셨구나 하는 마음의 기쁨이 올라오게 됩니다. 진실한 기쁨으로 공동체를 위한 헌금을 하게 됩니다. 그 무엇도 아깝지 않고 감사하게 됩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설레고 말씀을 들으면서 절로 찬양이 나오게 됩니다. 빗방울과 나뭇가지만 봐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이란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교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단체, 구제사업 단체는 그냥 돌아가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헌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예배가 필요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죄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구약시대와 그 결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념(기억)해야하는 일들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삶을 사는 우리는 이제 십일조를 강요함으로써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진실한 기쁨으로 내야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해야하는지 올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초신자에게 까지 헌금을 강요하는 세속적인 교회가 분명 있습니다. 성도들의 분별력과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모두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당신이 구원의 확신과 진정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십일조를 내면서 이중과세 같은 고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연단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언제 부턴가 저는 평신도로서 예배를 준비하면서 성경책 속에 헌금을 미리 넣어둡니다. 그 때 마다 금액이 작든지 크든지 지폐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함을, 내 마음의 진정한 기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돈이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기관)를 통하여 계획하신 대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교회의 규모가 크든 작든 각자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내 마음이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초월하는 순간을 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연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 영적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고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구원 이후에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려가는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헌금을 내는 일 조차 욕심을 벗어나는, 진정한 찬양을 알게 하시는 연단의 과정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받기 원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면, 세상의 물질로 채워진 마음이 비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아래 야고보서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욕심이 스스로를 시험들게 만든 것입니다. 주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하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드는 한 가지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의 과정과 성경의 역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세상 곳곳에 크고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간단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기쁨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말씀>
야고보서 1장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글을 쓰고 바로 맥체인 성경읽기를 하는데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을 다 읽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두 똑같이 사랑하시며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구약 때나 지금이나 죄인입니다. 우리가 시험의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나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 하면서 겉으로만 경건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위에서 언급한 방송 클립 영상
유튜브 CBSJOY 채널 영상 공유
짧은 클립 영상이 삭제되어서, 대신 풀버전 영상이 있어서 링크 걸어둡니다. 십일조 말고도 여러 재밌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말씀해주셔서 공감되고 유익했습니다. 한 번 보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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