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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입봉 후 직면한 ‘결정 장애’ (창의적인 명확함이 필요한 직업)

프로듀서(PD)와 연출자 본연의 역할은 별개이지만 보통의 방송 PD는 그것을 겸한다. 프로듀서로서 기획 및 제작 총괄, 연출자로서 무형의 결과물을 유의미한 그림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외주 프로덕션의 PD였던 나였기에 그 의미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PD로 입봉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직면했던 것은 ‘결정의 어려움’이었다. 연출의 방향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정에 익숙지 않아 생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그 당시,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카메라 감독님과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음식과 풍경을 담는 촬영이었는데, 필요한 컷들의 사이즈, 앵글, 움직임에 대해 자신감 있게 설명드리지 못..

관찰자로서의 방송 연출 (동료들은 다 아는데 이제야 정리해보는 관찰의 개념)

나는 사람들의 행동,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 존경받는 희생의 이타적인 판단까지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원활한 편집을 하려면, 촬영 단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잘 담아야 한다. 어떤 ‘행동’(움직임 그 자체 혹은 의도)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처럼 컷과 컷의 작은 단계부터, 신과 시퀀스의 굵직한 덩어리까지 주제를 향한 ‘액션과 리액션’의 협응이 필요하다. 내용이나 느낌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액션만 계속 발생되는 장면의 연속은 의도된 연출에 의해서 강렬하고 특이한 느낌(주로 광고, 뮤직비디오)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삶 자체도 행동과 반응의 연속이며, ..

인터뷰 진행 중 경험한 이상 신체 증상 (내성적인 PD의 말 못 할 고충)

교양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조차 말 못 한 고충 하나가 있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한 관계로 혼자 촬영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메라를 가슴에 붙여 들고 몇 발치 앞의 인터뷰이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동안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주로 목 뒤로부터 시작하는 근육의 경직이었다. 이게 시작되면 인터뷰이와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긴장이 목덜미 위아래로 퍼지면서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카메라를 조금 높게 들어서, 액정화면 뒤로 내 얼굴을 숨겼다. 시선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증상이 완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액정 화면 속의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그 간접적인 시선만으로도 몸의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