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 사이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CP83 2019. 9. 21. 11:09

칸딘스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들. 이론으로 정확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작품들(흉내내기)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과거의 양식을 복제해서 만든 작품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답과 힌트를 얻어가고 있다. 예술에 대한 그의 통찰이 시대를 뛰어 넘는다. 그는 예술을 이론화 하는데 있어서 깊은 통찰과 사유를 한 것 같다. 분석에 의한 논문 같은 느낌 보다는 경험과 관찰, 시행착오를 통한 깊은 사유의 기록 같은 책이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은 이론이 앞서고 실제가 뒤따른다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인상깊고 어려운 구절들이 많이 있으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간략히 발췌해 적어놓는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바실리 칸딘스키(열화당))


82p 회화론 중에서


 일반적인 구조가 순수히 이론적으로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창조의 참된 영혼인(그러므로 어느 정도 그의 본질이기도 한) 이 플러스(Plus)가 창조과정에서 감정에 의해 갑작스럽게 촉발되지 않는다면, 결코 이론에 의해 창조되지 않으며 또 아무것도 발견되지도 않는다. 예술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예술은 역시 감정을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다. 가장 정확한 비례와 가장 정밀한 저울과 추를 사용해도, 정확한 결과는 결코 머릿계산이나 연역적인 측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비례는 결코 산출할 수 없으며, 그러한 균형은 결코 완성된 상태로 발견할 수 없다. (각주47) 비례와 균형은 예술가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극한감정이라든가, 예술적인 민감성이라고 부르는 것, 즉 예술가가 선천적으로 타고나며, 영감을 통해서 고양해 천재적으로 발현하는 특성인 것이다. 괴테가 예언한 통주저음의 가능성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회화문법은 이제 다만 예견될 뿐이다. 이러한 문법이 궁극적으로 실현된다면 그것은 물리적 법칙의 근거(이미 지금까지 추구해 왔고, 오늘날에도 다시금 '입체파'에 의해 시도하고 있는 바와 같은) 위에서 구축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영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내적 필연성의 법칙 위해서 구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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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예술의 황금 비례라든가 아름다운 법칙 같은 것으로 감동을 준 것 같은 작품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라는 궁금증이 들 때 각주 47을 읽을 수 있었다.)



82p 각주 47.


 다재다능한 대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작은 스푼의 척도를 고안해냈다. 그것으로써 여러 가지 색깔들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일종의 기계적 조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이 보조수단을 응용하려고 고심했으나 실패했다. 당황한 그는 동료에게 어떻게 그의 스승이 이 작은 스푼을 쓸 수 있었던가를 물었다. 그의 동료는 "스승은 그것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그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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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는 예술이라는 것이 예술가의 감정이 발현되어 표현된 것. 그것을 다시 감상자가 감정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내적 필연성의 법칙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면서 독자인 내가 예술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와 그 차이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굉장히 어려운 책이지만 흥미로워서 천천히 두고 읽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