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4

‘습관성 미안함’ 가진 PD가 생각하는 ‘방송 연출’ (이제와 반성문 길게 쓴다고 잘한 것은 아니지만)

TV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험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 다르게 일종의 ‘반성문’을 쓰게 되는 기분이다. 알게 모르게 방송 때문에 도움 주신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들이 많을뿐더러, 개인적인 성취의 부족과 시스템의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음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작업해온 ‘방송 연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적기 전에 먼저 찾아본 사전에는 연출을 ‘대본이나 현실(팩트)을 가시화하는 작업’(영상콘텐츠제작사전 참고)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더해서 ‘방송 연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고 싶다. 「생각과 글의 내용, 느낌이나 분위기, 어떤 의도 등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개념적인 것들을 영상과 소리에 기반하..

‘눈물 편집’에 관한 부끄러운 고백 (때로는 시청률보다 출연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내가 제작했던 프로그램 프롤로그 중에 ‘눈물’로 시작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극적인 인터뷰와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한 시간짜리 영상의 시작으로 강렬한 첫 카드를 던지고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롤로그는 해당 회차의 화두를 던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만들어지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프롤로그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나열하는 하이라이트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결론을 다 지어놓고 이유를 파보는 추리 영화의 첫 시퀀스가 될 수도 있다. 형식은 파괴되고 있고, 연출의 제약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첫 장면부터 눈물을 흘리는 일반인 시청자의 모습이란…. 이제 와 다시 보니, 그것만큼 부담스럽고 보기 민..

관찰자로서의 방송 연출 (동료들은 다 아는데 이제야 정리해보는 관찰의 개념)

나는 사람들의 행동,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 존경받는 희생의 이타적인 판단까지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원활한 편집을 하려면, 촬영 단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잘 담아야 한다. 어떤 ‘행동’(움직임 그 자체 혹은 의도)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처럼 컷과 컷의 작은 단계부터, 신과 시퀀스의 굵직한 덩어리까지 주제를 향한 ‘액션과 리액션’의 협응이 필요하다. 내용이나 느낌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액션만 계속 발생되는 장면의 연속은 의도된 연출에 의해서 강렬하고 특이한 느낌(주로 광고, 뮤직비디오)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삶 자체도 행동과 반응의 연속이며, ..

인터뷰 진행 중 경험한 이상 신체 증상 (내성적인 PD의 말 못 할 고충)

교양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조차 말 못 한 고충 하나가 있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한 관계로 혼자 촬영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메라를 가슴에 붙여 들고 몇 발치 앞의 인터뷰이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동안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주로 목 뒤로부터 시작하는 근육의 경직이었다. 이게 시작되면 인터뷰이와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긴장이 목덜미 위아래로 퍼지면서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카메라를 조금 높게 들어서, 액정화면 뒤로 내 얼굴을 숨겼다. 시선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증상이 완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액정 화면 속의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그 간접적인 시선만으로도 몸의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