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좀 피곤해 보이는데?”
“어...”
“잠이라도 설쳤어?”
“그냥 던진 말이겠지만 넌 촉이 좋단 말야. 진짜 이상한 꿈을 꾸긴 했거든... 무서운 꿈이라고 해야 되나?”
“그 뭐더라? 네가 말했던 1년에 몇 번 없다는 그 날이었나 보네?”
“응. 평소엔 혼자 지내도 아무렇지 않은데, 이상하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오싹한 밤이 있어. 어제 꿈도 좀 뒤숭숭해”
“말해 봐. 어떤지는 내가 듣고 얘기해줄게”
“어... 그게... 꿈속에서도 새벽 두 세 시 쯤 됐던 것 같아.”
“시작부터 음침하네”
“정확한 앞뒤 정황은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웅장한 석조 건물 내부를 핸드폰 조명만 가지고 헤매고 있었어. 바닥은 아주 차가운 대리석이었고,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았지.”
“음...”
“아마 1층 중앙 홀 같은 곳에서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을 거야. 그 때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버렸어.”
“...”
“눈을 어둠에 적응시키면서 아주 조금씩 앞으로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아주 두껍고 단단한 내 신발 아래로 뭔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어. 말랑한 외피 속에 딱딱한 게 들어있는 어떤 생물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몇 발자국을 걸어갔어.”
“으... 계속 해봐”
“그 때, 복도 끝 멀리서 어떤 여자가 소리치더니, 손전등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어. 그 여자는 내 앞에 다가와 바닥에 불빛을 비추더니 정말 소름 돋는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았어.”
“...”
“내가 밟았던 건, 바닥에 자고 있던 신생아들이었어.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하 1층 바닥에는 그 여자가 돌보던 갓난 아기들이 누워있었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몇 명의 아이들이 나 때문에 죽어있었어.”
“이런...”
“나는 바닥에서 눈을 떼고 그 여자를 바라봤어. 여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어. 그런데...”
“?”
“그 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어떤 이상한 감정이 생겨나더니, 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거야.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정말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기들을 바라봤어. 그건 내가 겪어보지 못한 부모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평생 내가 낳아보지 못 한 ‘아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사무치게 사랑과 죄책감을 느끼는 아주 복잡하고 거대한 감정이었어. 떨리는 손으로 죽어버린 아기들을 하나 씩 안으면서 계속 울기만 했어. 그러다가 잠에서 깼지. 아마 새벽 네 시 쯤 됐었던 것 같아.”
“엄청난 꿈인데? 우리 둘 다 아기는 커녕 결혼도 안 한 싱글이잖아.”
“잠에서 깼는데도 꿈에서와 비슷한 새벽이라 그런지 한동안 그 먹먹함이 느껴졌어. 지금은 현실이구나. 그 감정은 꿈이었구나 하고 금방 깨달았지만 말이야. 최근에 친구들 결혼이나 돌잔치에 다녀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그런 꿈을 꿔버렸어...”
“이상한 꿈이긴 하지만, 굉장히 의미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내가 요즘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거든. 들어봐.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보편적으로 겪어야 하는 경험들이 있잖아? 태어나서 부모에게 사랑받고, 성장해서 독립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런 것들이 보편적인 거라면...”
“응...”
“그런데, 그 일반적인 경로에서 조금씩 벗어난 사람들이 있잖아, 학교를 안가고 따로 공부했다든지, 너나 나처럼 결혼 적령기에 싱글이라든지. 아무튼, 보편적인 삶의 루트를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제 때 느껴야 할 어떤 인생의 감정과 성장을 제대로 겪지 못하고 있구나. 경험해 본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어떤 면에서는 결여되어 있구나 싶은 거야.”
“그럼 내 꿈이 뭐 강제로 아이들에 대한 감정을 느껴봐라! 라고 했다는 거야?”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결혼이나 출산, 육아 같은걸 지켜보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경험들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하게 느끼는 거지만, 내 나이 때 보편적으로 느껴야 될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경험이나 깨달음을 주변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어떻게든 보충하려고 한다는 느낌인거야. 내 몸이 자꾸만 그런 것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기분이랄까?”
“좀 복잡하네. 우리 나이에 겪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경로를 통해 배우려고 하게 된다...? 그건 그냥 단순한 호기심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요즘이었는데, 네 꿈 얘기를 들으니까 너도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결혼이나 육아에 대한... 어쩌면 피붙이에 대한 부모들의 애착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 말 대로라면, 다른 꿈으로 또 어떤 걸 경험하게 될지 내 무의식의 욕구에 대해서 두려워지는데?”
“그 전에 우리가 일반적인 삶의 경로? 그런 것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체 보편적인 삶이란 게 있기는 한 거냐? 나는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싱글로 지내는 게 비정상인 것도 아니고”
“물론, 너나 내가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런데, 주변에서 ‘너는 왜 결혼 안 하니?’, ‘애 언제 낳을 거니?’ 하면서 걱정한다면 우리 나이의 대다수 사람들은 보통 그런 일들을 겪고 있다는 거 아닐까?”
“갑자기 네 얘기 때문에 복잡해졌는데, 아무튼 내가 꿈에서 느낀 그 ‘아이들’에 대한 엄청난 감정은 사실 꿈에서 깬 다음에는 그냥 ‘그런 게 있었지’ 정도 밖에 안 느껴지더라고. 꿈에서는 거대한 감정의 폭풍 같은 거였는데 현실에서는 그걸 고스란히 느낄 수가 없었어. 아마도 내가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 까지는 절대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겠지.”
“그래. 결국 본인 스스로 겪지 못하면 어렴풋이 생각해보는 정도가 최선이겠지. 절대 그 감정의 실체를 알 수가 없을 거야.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건 결국 비유라는 껍데기일 뿐이니까. 그나저나 그 꿈 정말 특이하긴 하다. 꿈에서라도 네가 그런 엄청난 감정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놀라워. 근데 너 사귀는 사람 있냐? 사고 쳤어?”
“무슨 소리야. 그런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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