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 – 동’
“누구세요?”
‘철 – 컥’
“안녕하세요. 저는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네? 뭐요?”
“최근에 부끄러운 일 하신 적 있으시죠? 그것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아니... 무슨 단체에서 오신 거 같은데, 뭐 촬영하세요?”
“댁이 유명인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 뜬금없이 부끄러운 일 했냐고 물으니 황당하잖아요? 아니다. 관심 없으니까 돌아가 주세요. 그럼...”
“황당? 다른 얘기 해드릴까요? 혼자 잘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케케묵은 것들을 기어코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애꿎은 사람들 얼굴에 뿌렸단 말입니다. 그게 더 황당하지 않나요? 누구냐고요? 당신이죠. 직접 경고해주러 온 저를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시네요?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나요?”
“아니 뭐 앞뒤 설명 없이 이렇게 사람 당황하게 만들면 어쩌자는...”
“지난 1년 동안 지켜봤습니다. 당신의 허세 때문에 고통받았던 주변 사람들의 고백이 여기 USB에 담겨있어요. 처음엔 뭘 몰라서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는 행동을 분석해보니 당신 자신도 무지하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더군요. 일종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서 더 가식적이고 허무맹랑한 행동을 하더군요. 본인도 잘 알고 계시죠?”
“네? 저는 딱히 그런 적이 없...”
“대부분 다 그렇게 말하죠. 뭐 일상적인 행동을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누구나 야생마 같은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걸 제대로 길들이지 못한 죄라 할까? 알면서도 군중 앞에 풀어놓은 거죠. 욕망에 노예가 된 롱코트 변태 아저씨처럼 말이에요. 당신의 빈 수레를 미는 바람에 온 동네가 시끄러운 것 보다, 어쩌면 그저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허세는 순수할 지경이죠.”
“그런 것도 죄가 된다고요?”
“뭐, 법적인 죄목은 아니지만,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죠. 허무맹랑한 허세가 허용 혹은 인정되는 경우가 말이죠. 물론 당신은 아니에요.”
“무지함, 허세, 부끄러운 행동 같은 것들이 허락된 때가 있다고요? 내가 이걸 왜 물어보고 있지...”
“뭐, 본인의 양심에 달린 선택이겠지만, 하고 나서 ‘후회하지 말자. 후회는 없어’하는 생각이 들 만큼의 값진 허세가 있긴 하다는 거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한 일종의 도전? 뭐 그런 거죠. 당신이 저지른 일 중에는 후회가 없을 만큼의 ‘값진 허무맹랑함’은 없었죠. 역시 본인도 잘 알고 계시겠죠?”
“갑자기 찾아와서는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 안 되는 육중한 새벽.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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