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부지런한 인간이 되어보자며 시작했던 ‘아침 수영’. 일곱 시에 시작하는 체조에 맞추려면 보통 여섯 시 조금 넘는 시각에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수영하지 않는다는 어떤 선배가 말했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특히 준비와 정리가 번거로운 운동이 수영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 수영을 다닌다.


학창 시절이나 군 생활의 내 모습에 즐거운 운동은 없다. 그래. 나는 운동에 재능이 없구나. 또래 집단은 평범하게 즐기는 활동일 뿐인데, 감각과 실력이 없으니 재미도 없었다. 그런데 수영을 배우고 생각이 달라졌다. 물속에서는 몸이 가볍고 자세가 곧아졌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폐가 열린 듯 상쾌했다. 강습이 힘들어 헐떡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 게 ‘러너스 하이’ 아닐까 싶은 활기찬 기분을 느껴보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구기 종목에 재능이 없을 뿐, 운동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벌써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침 일찍 수영을 가기 위해서는 짧은 운전을 해야 한다. 덕분에(?) 하루의 첫마디가 ‘욕’이 되는 날이 많아졌다. 운전하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면 사적인 공간에서의 감정 표현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새벽의 또렷하지 못한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부정적 감탄사라는 사실이 싫었다. 나에게 아침 수영은 운전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나는 가끔 어제를 허투루 보낸 것 같은 일종의 가벼운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수영장에 다녀오면, 날짜가 달라졌지만 ‘새로운 어제’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짜증 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것이 ‘반복 훈련의 기회’라고 마음먹기로 했다. 마치 타임 루프 영화처럼, 반복되는 순간마다 다른 선택을 하면서 나를 변화시켜보기로 했다.


택시와 버스 같은 영업용 차량이 조금 사납게 운전하더라도 노동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양보한다. 누군가 뒤에 바짝 붙어 조바심을 낸다면, 차라리 공간을 만들어 보내준다. 판단하기 어중간하면 입을 다물고 있기로 한다. 여전히 화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런 설정 덕분인지 내비게이션의 안전 운전 점수도 조금 올라갔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 아니다 싶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추상적 목표를 세우곤 했다. 열심히 해야지, 작은 것에 화내지 말아야지,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지.


요즘의 나는 되도록 작고 실천 가능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의 정도를 가늠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부정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습관이 되어 고착되기 십상인데, 어째서 그것을 되돌리려면, 혹은 긍정적으로 변하려면 이런 강제적인 지침이 필요한 걸까? 내가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악하기 때문이라는 뜻일까? 작은 계획과 목표들이 습관이 되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변화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능할까?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천명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그런데, 사실 오늘은 늦게 일어나서 아침 수영을 못 갔다...

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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