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속물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때,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가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동경하고 있는 그런 사람,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 위에 서 있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데 갈 길이 멀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모모의 주인공처럼 한 발짝 앞만 바라보면서 계속 청소해 나갈 뿐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단 한 번의 벼락을 맞아 달라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체험이 없는 대신, 조금씩 변화되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약하게 주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나만의 테마가 될 수 있는 글귀나 문장을 책상 근처에 붙여두고 있다. 작년에는 '몰입',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내 주변에 있다.' 이런 말들이었다.

 

며칠 전 새벽에 문득 '같은 것을 보는데 다른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이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내 안에서 조합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떠오른 즉시 그 말에 설득당했고, 책상에 붙여두기로 했다. 조금 손을 대서 '발견하는''발견할 수 있는'으로 바꿨다. 그냥 그렇게 고치고 싶었다. 단어를 고치면서 몇 번을 더 읽어봤다. '같은 것을 보는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이 문장의 첫인상은 창의력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배움이자 순종이고, 기다림이면서 기쁨이고 그런 여러 가지 의미였다. 그래서 나에게 의미 있는 문장이 되었다.

 

20대 초반 군 관물대에 적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그 이상만이 그 이하를 볼 수 있다.'라고 적었는데, 이것 역시 어디서 들었는지 왜 그런 글귀를 떠올리고, 적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작은 사람인 걸 알지만 저 위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혹은 체험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더 나은, 더 크고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한참이 지난 지금, 그때와 전혀 다른 사람 같다고 느끼면서도, 최근에 느끼는 생각과 어렸을 때의 생각이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큰 발전 없이 살았나 싶기도 하다.

 

그밖에도 예전에 메모해서 책상 옆에 붙여두었던 키워드들을 다시 보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한다. 올해의 문장이라고 거창하게 적어놓은 글귀 하나가 무슨 큰 일을 하겠느냐마는 이런 행위와 생각으로 글 하나 건졌으니 나름 괜찮은 시작인 것 같다. 그렇게 2020년을 조금 늦게 출발하고 있는 요즘이다.

 

 

BGMPorter Robinson ‘Sad Machine’, '저 높은 곳을 향하여(찬송가 491장)'

사진. composition83




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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