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내 주변에 아주 가끔 있다는 것을 ‘인식’만 겨우 한 상태라서 그 사람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더 성숙해진다면 그 어떤 파도라도 부드럽게 품는 해변 같은 사람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테지만, 유독 나의 마음을 괴롭힌 사람의 유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상 적으려니 까다롭긴 한데 굳이 정리한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행동(부추김)한다. 그런데 정작 쌓여온 감정(긍정, 부정)을 그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는데?’라고 반응한다. 잡아떼는 느낌 이상의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적어놓고 보니 나 혼자서 김칫국 마신 것 아니냐? 고 말할 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 이게 나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가스라이팅’의 친척뻘 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상황에 대한 내 입장을 꺼냈을 때 서로의 오해를 풀 수 있다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채 대화가 단절되어 버린다면 그 관계는 더 이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런 정체된 관계들이 내가 불편함을 느끼며 피하고 싶은 만남이다.


 이게 좀 정리하기 까다롭다고 한 이유가 감정이나 대화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내가 인식하는 내 감정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나를 탓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한심함을 느끼는 등 하나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방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분명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도 한다. 이걸 그나마 쉽게 말하면 같은 공간에서 평소처럼 대화하고 있지만, 상대는 자신의 본심(이익이 될 만한)을 숨기고 있으면서 나와 통하는 끈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똑똑한 사람이 이런 기분에 대해 속 시원하게 정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관련된 정보를 접하지 못해서 혼자 그냥 그런 기분이라는 인식만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게 또 그동안의 내 습관을 봤을 때 분명 언젠가는 스스로 답을 찾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느끼고 있다.


 넷플릭스에 ‘테라스 하우스’라는 시리즈를 보다가 확 깬 적이 있었는데, A라는 남성 출연자가 B라는 여성 출연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C라는 여성 출연자가 합류하게 되었다. C는 A와 자주 엮이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A는 고심 끝에 B를 포기하고 C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C는 그냥 친구로서 대화가 통해서 데이트에 나왔을 뿐인데 고백을 받아 무척 당황스럽다며 아주 강하게 부인하고 뛰쳐나간다.(커플 매칭 프로그램인데?) 재밌는 건 시청자나 A 당사자 누가 봐도 C가 A를 좋아한다는 인상을 줄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점이다. 키스와 스킨십도 오갔던 상태였으며 방송을 함께 보던 게스트들도 의외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연히 A는 멘붕 상태. C는 끝까지 자기는 그런 적 없었다 말하고, 나는 왠지 그 회차 이후로 방송을 보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졌다.


 연애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지만 이것과 유사한 분위기의 (짧거나 긴) 상황이 선후배 혹은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서도 발견되곤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무조건 악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착해 보인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서도 이런 상황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표면적으로는 좋은 관계이고 세상의 잣대로라면 착한 사람 부류에 속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언젠가 가족 모임에서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느낀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할머니가 놀란 눈에 대뜸 목소리를 높이며 그런 적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게 과연 어머니의 착각이었을까? 그동안 가까이서 봐온 내 입장에서 할머니의 잘못이 크다고 여겨졌다. 여기에 자세히 적을 수 없지만 어머니는 맏이로서 인생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했으며 참아왔다는 정도만 적고 싶다. 그런 상황을 몇 차례 관찰하다 보니 내가 겪었던 특정한 상황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범죄는 아니기에 손 쓸 수 없는, 이른바 ‘착한데 이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 후, 할머니는 가족들의 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자 혹시나 내가 그랬다면 미안 하노라 말했고, 그나마 훈훈하게 상황이 마무리되었다.(하하)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건이라면 가해자에 해당될 법한 이 사람들은, 자기가 나에게(남에게) 무슨 느낌을 주는 행동을 했는지 분명 인식하고 있을 텐데 말은 계속 아니라고 한다. (‘가스라이팅’은 그 원리를 모르면서 본능적으로 상대를 쥐고 흔들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어쩌면 할머니는 마음속의 어떤 작용 때문인지 어머니에게 했던 행동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런 유사한 경우라고 가정할 때, 내가 그 상황을 입에 담는 순간,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떼기 시작하고 나는 졸지에 설레발친 바보가 된다. 처음엔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오해했다며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나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물론 내가 설레발쳤던 경우도 있음. 이제는 그게 약간 구분이 됨) 그래서 이런 상황을 인식하면 피할 뿐,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친해지기 어렵다는 이유가 이래서 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감추고 하는 행동은 결국 찔끔 터져 나와 냄새를 풍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좀 쿨하지 못한 성격이라서 이런 식으로 나를 분석하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그런 감정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적다 보니 좀 미친 사람 같기도 한데, 인간에겐 누구나 다 그런 구석이 있으니까. 하아…. 그런데 적다 보니 나 역시도 여러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을 걸까….


 단순한 대화 부족이라고 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나름 정리해보려고 글을 쓰게 됐다. 한참을 쓰다 보니 상대방의 말투나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어느 명사의 말이 생각난다. 나름대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스트레스를 덜며 박제하는 기분이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한낱 투정이었다며 웃을지 다른 무언가로 깔끔하게 정리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겉은 평온한데 속은 아주 흥미진진한 요즘이다.



BGM♪ ‘Wrapped in Kindness(「Kiki’s Delivery Service」 Ending Theme)’

사진. 글 ⓒcomposition83

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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