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모습은 내가 아니야.'라며 상황에 젖어있을 때가 있다.


화가 나서 잠시 이성을 잃었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때.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아픈 나머지 의욕이 사라졌을 때. 큰 상실 때문에 우울함에 빠졌을 때.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낯선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속의 나는 여전히 나이며 다른 그 무엇이 된 적이 없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누군가는 악하게 변한 상대에게 지금의 악한 모습은 원래의 네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나이를 먹어서 신체적 정신적 문제에 직면하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거나, 아주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순간 정도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 어떤 모습도 내가 아닌 적은 없다. (내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나를 상실한 순간이 되기 때문에 나라는 인식이 이미 사라진 순간 이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이 곧 그 사람이라고 말한 누군가가 있다.)


내 감정이 메말랐나? 매정한 소리가 아니다. 그런 낯선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보통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런 안락하지 못한 시간에 던져진 알몸의 내가 보이는 반응들은 대체로 부정적이기 마련이다. 낯선 내 반응에 스스로 반감을 느끼고 이건 내가 아니라는 말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할 것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내 모습도 모두 내 안에 잠재적으로 깃들어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예측 못 할 것이라는 사실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면 내가 아닌 것 같던 그 순간의 나는 달라질 수 있다.


나를 속이지 말고 그대로 인식한 뒤에야, 부정하고 싶은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고, 상황 개선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내가 나 아닌 적이 없더라. 나도 모르는 내가 있더라. 언젠가는 또 모를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더라. 그 순간이 왔을 때 이걸 기억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동차를 살 때 새 차의 비닐을 벗기며 기분 좋아할 내가 있다면. 교통사고의 잠재적 위험이 함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고 대비하는 나. 각종 유지비를 계산해보는 침착한 내가 함께 있어야 하는 셈이다. 여전히 운전할 때 욱하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비유와 실제의 차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BGM♪ Fantastic Plastic Machine 'City Lights'

사진. 글 ⓒcomposition83

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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