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83 다이어리/창작과 일상 사이

섭리적 우연

CP83 2020. 12. 1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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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 우연



“너는 오페라나 뮤지컬, 클래식 공연 같은 거 보러 간 적 있어?”


“회사에서 문화생활하라면서 단체로 보내고 그랬는데, 나는 취향이 아니라서 안 갔어. 근데 왜?”


“요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주식도 모르고 골프나 스키 같은 것도 탈 줄 몰라. 카지노에 가본 적도 없고, 번지점프를 해본 적도 없지. 뭔가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내가 아는 세계보다 모르는 세계가 더 많은 기분이었어. 그런데, 내가 몇 년 전부터 큰 맘먹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한참 재미를 느끼면서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그동안 내가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수영은 왜 재밌는 걸까?”


“수영이 맞았나 봐?”


“응. 학교 다닐 때부터 축구나 농구, 족구, 심지어 탁구 같은 구기 종목은 영 소질이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내가 스포츠에 소질이 없구나. 운동 능력이 없구나 싶었어. 그러니까 재미도 없었지. 그런데 수영을 하니까 강사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또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이렇게 저렇게 혼자 연습을 하면서 새로운 영법을 배우고, 수영 능력도 좋아지는 게 재밌는 거야. 그러면서 아. 내가 운동 자체를 못하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운동을 찾지 못했었던 거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


“그래. 나도 언젠가 수영은 아니지만 프리다이빙 같은 거 배워보고 싶긴 해.”


“응.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너무 많은데 요즘은 참 좋은 시대 같아. 조금만 여유를 내면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체험해볼 수 있는 것들도 많고. 정보도 많고. 프리다이빙도 그렇잖아. 아까 내가 말한 공연 전시 같은 건 그냥 예를 들어본 거고, 여러 가지 안 해본 것들을 해보면서 내가 몰랐던 내 어떤 부분을 찾아가는 기분이 참 좋더라 이 얘기였어.”




내가 최근에 만났던 지인과의 대화를 다듬어본 내용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이것저것 직간접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해두면 나이를 먹어서 분명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의 시각이 넓어질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는데, 최근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해온 것이 조금 명확해진 계기랄까?


나는 일종의 다양하고 무작위한 정보(체험)를 건드려보는 행위가 나에게, 혹은 내가 스스로 잊고 있거나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일깨우기 위한 행위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식이나 지혜를 성장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내 앞의 길을 제시하는 영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한 성장이 단순한 성장을 주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한 메시지를 함께 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후로, 나는 한동안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며 거기 소개된 책들을 구매해 읽어보기도 했고, 하루에 한 페이지 씩 읽는 교양서적을 사보기도 했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영어 방송도 일부러 틀어놓기도 하고, 모르는 신조어나 밈에 대해 검색해보기도 했다. 혹은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갖게 되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기회를 찾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는 작은 즐거움들이었다. 배움의 즐거움. 인생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어떤 교육과정에 넣고 조금씩 가르침을 내 앞에 밀어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집착했던 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편으로는 이런 일련의 경험을 내가 분명 실행하며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확실하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여기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것만 봐도)


그리고, 오늘 온라인 예배 설교 제목은 ‘섭리적 우연’이었다.


나는 가끔 어떤 상황이나 단편적인 생각을 메모해두곤 하는데, 그 내용이 장황하게 늘어나기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적절한 단어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고, 설교 제목 두 단어가 앞서 언급한 내용을 정리해주었다.


여러 학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하며 세분화되고, 그룹별로 전문화되면서 초심자가 접근하여 배우기 어려워진다. 나는 그 이유가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개념들이 함축되면서 단어화가 많이 이뤄지고, 그렇게 축약되고 정리된 개념들이 충돌하고 섞이면서 새로운 개념을 낳아 발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그룹의 입문자는 그 누적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 이미 내가 경험한 내용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기록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오늘은 마치 내 마음속 백과사전에 새로운 개념의 명제가 추가되는 기분이었다.


‘섭리적 우연’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 매료된 것도, 일종의 내가 우연을 가장해 마주한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들이 표면적으로는 우연일 수 있겠으나, 내가 꼭 맞닥뜨리기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남에게 이해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험이 그렇다. ‘섭리’와 ‘우연’은 전혀 비슷한 맥락의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내 경험을 너무나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어째서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것도 결국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적인 거대한 존재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었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내 앞에 놓이게 된 일종의 커리큘럼을 받아들이고, 탐색하며 분별력을 기르는 ‘훈련’ 중인 것이다. 그것이 내게 정해진 ‘섭리’이며, 과정은 ‘우연’처럼 내 앞에 슬며시 놓여지는 셈이다.


나와 친구들이 나이를 먹어간다. 부모님이라든가 주변의 나이 드신 지인들 모습에서 이런 ‘발견하기 위한 시도’를 찾기 어려워진다. 일상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새로운 정신적, 육체적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모습들이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호기심과 이해는 피곤하며, 몸은 무겁고, 그동안 시도해왔던 그럭저럭 통하는 것들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가지만, 그나마 계속 품에 꼭 껴안으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몇 가지 느낌 같은 게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보다 익숙한 것에 주저앉는 삶으로 멈춰있다는 점이다. 투입이 없으면 새로운 출력물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내가 말한 새로움을 찾아 경험하는 일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거창하게 낯선 도전을 시도하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일상에서 작은 새로움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호수공원 산책, 익숙하지 않은 길로 목적지 찾아가기, 먹어보지 않은 음식 사 보기, 수면 자세 바꿔보기, 비타민을 먹거나 햇빛을 쬐어보기, 탄산음료 대신 탄산수 마시기, 제목만 보고 끌리는 영화 한 편 보기, 낯선 가수 음악 들어보기 등 작은 변화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그 속에 숨겨진 나의 상황에 맞게 해석되는 메시지를 발견해낼 수 있다. 새로운 것들에서 익숙한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작품이나 음악을 꼬리 물기 식으로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생각, 다른 시각을 발견한다. (나는 ‘베이퍼웨이브’라는 장르를 최근에야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한 자극의 도전보다도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큰 도전 역시 즐겁지만 몸을 사리게 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스카이다이빙 같은 도전은 굳이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언제까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동안은 이런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만족하며 계속되는 작은 새로움에 기뻐할 것 같다. 일상에 뿌려져 있는 ‘섭리적 우연’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일까.




BGM♪ DAUL ‘For Us (Feat. THAMA)’

글. 그림. ⓒcomposition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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