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모님과 대화하다가 내가 무슨 말 실수를 하거나 무례하게 이야기하면 지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은 나에게 더 익숙한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세상은 빠르게 적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술로 세상이 바뀌어가고, 왠지 그것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것들에 조금씩 자식에게 의지하게 되는 그런 형국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게 아닐 수 있지만 나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혼내던 어린시절의 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네가 알아서 잘 컸다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주는 그런 어른들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인생에 이제는 어떤 억제기. 브레이크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지적해줄 일도, 딴지를 걸 일도 없구나. 나 스스로 이제 모든걸 결정해야 하는구나. 부모님도 어린시절의 나처럼 혼낼 일이 없구나. 내가 잘 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나이를 먹었으니까,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대신 배달 음식을 앱으로 주문해드리고, 필요한 물건을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해드린다. 가게 오픈 준비할 때 명함이나 간판, 메뉴판을 직접 디자인해드렸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좋아하신다. 그저 좋아하신다.
새로운 기술의 사용법을 부모님 세대에 알려드리면 그렇게나 좋아하시면서 주변 친구들한테 자식이 알려줬노라고 자랑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세대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다 겪는 그런 이야기인가 보다. 사람은 어째서 나이를 먹으면 익숙한 것만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심은 사라져가는 것일까.
사실 핑프라는 말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는 부정적이고 게으른 의미인데, 부모님 세대는 자연스럽게 그런 귀여운 핑프들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글을 이렇게 써서 그렇지 부모님 세대, 할머니 세대가 무슨 무기력한 세대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어린 자식을 대신해서 세상의 굵직한 일들을 처리해주던 부모의 무게감이 자식이 인격체로서 성장하고 사회에 적응한 구성원이 되면서 그 무게감이 비슷해지거나 역전되어가는 그런 상황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어른의 정의, 언제부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런 질문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사회에서 필요한 행정 절차를 찾아서 해내가는 것 그런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어른 아닐까 하고. 어린아이는 이런걸 몰라도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그런 일 자체를 하는 것을 어른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의미가 그렇다는 얘기다. 행정적인 일을 찾아 해야하는 나이. 그런 일을 하는 나이, 그런 행정 절차를 하게 된 이유와 배경에 어른이 된 이유들이 묻어있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져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어른들은 필요하다면 그런 복잡한 일들을 배워서 해야만 한다.
부모님과 연결된 무언의 행정적인 끈들이 하나씩 끊어져 간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종의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자식이 커가면서 느끼는 부모의 상실감은 이것보다 크겠지. 그것은 그저 정들었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젊은 시절의 추억과 이별에 대한 섭섭함일까. 모든 것은 하나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다.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작은 이별의 연속이다.
나를 붙잡아줄 사람이 없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되었다. 억제기가 없다. 필요하다. 내 판단의 확신이 드는 만큼 스스로의 규제 없는 진행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관대하고 더뎌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이런것을 귀찮아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그런 사람들 처럼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깊이 퇴고하지 않고 마구 써내려갔다. 앞으로 이런 토해내는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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