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83 다이어리/창작과 일상 사이

준비하는 삶, 하루치 위로

CP83 2022. 8. 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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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충분하지 못했던 걸까? 결과는 늘 아쉬움을 남긴다. 예상했던 결과가 힘들이지 않고 그대로 구현됐으면 한다. 그래서, 과정을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예상(상상)을 정답으로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있다. 거짓의 스노우볼을 굴리게 된다. 과감한 연출을 반복하게 되면, 그것도 기술이 늘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럴듯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을 예상해야 한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거짓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그것이 초래할 결과가 어떨지 상상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거짓이란, 시작하지 않았을 때 아름답다. 누가 몰라줘도 괜찮다. 내가 그러길 원했으니까. 그렇게 살고 싶다. 진실의 낙엽들이 마음에 쌓일 것이다.

 

등산화가 자동차 보조석에 놓여있음에도 그냥 날씨가 좋아 보여서 운동화를 신고 산길에 나섰다. 하지만 늦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산이었다. 오르막 중턱에서 아직 남아있는 눈을 발견한다. 등산화나 아이젠이 없으면 걸어가기 힘든 길이다.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30분쯤 걷다가 멈추어 생각했다. 다시 30분을 걸어 차로 돌아왔다. 무리해서 더 갈 수 있었겠지만 젖은 신발을 벗어 털면서 잘 그만두었다고 생각했다.

 

무슨 바람이 났는지 할머니께 글씨 연습하는 책을 사드리고 싶어서 검색을 했다. 결제하려다가 예전에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발견했다. 그렇게 책 13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아홉 권의 책이 도착했다. 다들 고만고만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크기도 제각각이고 두께도 두껍다. 전문서적들이다. 일종의 저자가 작성한 논문 같은 깊이 있는 주제를 좀 더 쉽게 풀어쓴 그런 인문학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과학, 트렌드, 철학, 미술 관련 서적이다. 나는 이런 것들에 왜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책을 사서 책장에 꽂으며 그저 관상용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걸까? 독서 습관을 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틈 내서 책을 읽는다는 것도... 아니다. 다 내 의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탓하는 동안 몇 페이지라도 읽다 보면 결국 내게 남는 게 있을 텐데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건 고민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누군가 그렇게 생각할 테지. '그냥 읽는 거지 뭐 계획을 하고 독서 전략을 짜고 그러는 거야? 그게 독서 맞아? 그냥 취미로 즐기는 거지. 일 때문에 읽는 것도 처음에 습관을 잘 들이면 그냥 문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져서 다 괜찮아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공간 여기저기에 책을 가져다 놓고 큰 생각 없이 집어 들고 있다.

 

마음에 드는 원단을 사서 커튼 자리에 꿰어 걸어두었다. 마 재질이라고 해야 하나? 성긴 틈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아침이다. 가볍게 넘겨야 할 것들을 애써 어지럽게 생각하고, 골똘하게 몰입해야 할 것들을 쉽게 포기하는 그런 하루들이 반복되고 있다. 어째서 이런 가벼움만 내 몸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의지 없는 삶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다. 정신과 몸을 처지고 빈약하게 만들어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만든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이유를 만들자면 무슨 이유를 못 만들까. 운동 기구는 지척에 있다. 의지만 있다면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질 수 있을 텐데.

 

모든 것은 의지의 싸움이요 몰입의 결과다. 몰입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몇 권의 책을 사고, 책상머리맡에는 그런 키워드를 붙여놓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건 생산적인 것이 아니었다. 돈이 기준이라면 그랬다. 무언가 도움이 되긴 됐을까? 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생활기록부에 학생을 관찰하고 기록하듯이 다 큰 어른의 삶에도 그런 관찰자가 필요하다. 방목된 삶 같은 어른에게 발전이 없는 건 그런 멘토가 부재중인 까닭이 아닐까. 모두 각자의 영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우러러볼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노래 가사가 계속 생각난다. 인간은 혼자 잘 난 체 하면서도 우상이 없으면 나무라도 깎는 얄팍한 존재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미용실 사장님께 머리를 맡기며 이야기한다. 소개팅이 전에 들어왔는데 상황이 그러해서 하지 않았다고. 그러자 사장님은 만나고 나서 결정해도 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 한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너무 위축되지 않았나 싶었다. 다음 소개팅이 들어온다면... 이제 와서 그런 기회가 생길지 의문이지만, 만남 정도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기회를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혼자 지내는 게 맞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비교하는 행위가 삶의 텐션을 떨어뜨린다. 그러다가도 햇볕 가득한 길을 한참 걸으면, 기분이 좋아져서는 다시 즐겁고 의욕이 충만한 상태가 된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에 앉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 있으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평생 거주할 수 있는 그런 적당한 집을 가지고 싶다. 이사 다니는 것이 싫고 시야가 벽에 걸쳐 답답한 창문이 싫다. 눈이 시원하고 싶다. 집에서 창 밖으로 바람과 햇빛과 풍경을 즐기고 싶다. 집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고 싶다. 큰 개와 작은 새를 키우고 싶다. 방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지는 않다. 조용하게 살고 싶다. 야채와 과일을 키우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수영을 매일 하고 싶다. 열대 식물을 가꾸고 관상어도 기르고 싶다. 깨끗한 인상과 맑은 눈. 군살 없는 몸으로 대충 옷을 걸쳐도 건강해 보이고 싶다. 단정한 머리, 깨끗한 신발. 좋은 인상과 안정된 목소리로 만만하지 않으면서 관대한 사람이고 싶다. 그것이 그냥 연기(Smoke)가 아니라 책장에 꽂힌 책만큼 내면의 사유와 종교, 철학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잔향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유머와 예의가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관계에 필요한 것들을 혼자 준비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것들을 써 내려가고 있나. 왜 이런 것들을 갈망하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 뭐 집 자체가 그래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내 공간을 나만 만족하도록 배치하고 꾸미는 것뿐 누구에게 보여주고 과시하고 싶지 않다. 그런 행위 자체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 누구나 다 안다는 것을 알기에 어른들의 삶은 그렇게 피곤해진다. 한편으로는 뭐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적어 내려 가는 이 글이 나에겐 하루치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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