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7

잡혀온 아이들

"애한테 얘기했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거부하고 여기서 시간을 벌자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위한 수용소가 있습니까?" 학생 A가 일어났다. 관찰 선생은 그의 행동을 기록했다. 호텔 방에는 지난밤, 골목 구석에 숨어서 작은 일탈을 하던 아이 여럿이 잡혀와 있었다. 지금 이 방에는 상관없는 또래 아이들과 그의 엄마로 여겨지는 사람도 보였다. 그저 교복 입은 학생들이 단체 여행 왔다고 여길법한 모습이었다. "아이 성적 때문이에요. 일부러 잡혀와서 시간을 끌려고 일탈 학생인 척하기도 하죠. 편법이긴 하지만..." 한 여성이 말했다. "저는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아요. 예전처럼 최루탄도 화염병도 없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저항을 떠올리면서 일종의 안전함 속의 작은 거부를 표시하는 거예요. 이런 레지..

그 토끼들이 살던 세상

“뭐야? 선물이라도 사 온 거야? 웬 쇼핑백 사이즈가 크다?” “선물? 생각 못한 걸 받은 건 맞는데...” “이리 줘 봐…. 이 지저분한 담요는 뭐냐? 토끼? 두 마리나? 너 다시 토끼 키우기로 한 거야? 근데 얘들은 이미 다 큰 거 같네?” “아니야.” “아니라고? 얘들 다 큰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내가 다시 키우는 게 아니라고. 전에 키우던 애들. 네가 봤던 토끼들이라고.” “뭐? 엄청 오래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토끼 얘기가 전혀 없었네? 처음에 블로그에 사진도 올리고 그랬잖아? “그래. 나는 왜 처음에는 엄청 호들갑 떨다가 일을 망치는 걸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얘들은 누가 돌봐주고 있었는데?” “나 진짜 벌 받아야 돼. 그냥 우리 집 베란다에서 알아서 크고 있었..

인간과 원자의 공통점 찾기 (갑자기 분위기 도넛?)

♪ Foster The People ‘Sit Next to Me’ (창작 글입니다.) “이거 공통점 찾기 앱이라는 건데, 지금처럼 뭔가 대화 주제가 없을 때 해보면 좋은 앱이래. 단어 몇 개가 무작위로 나오면 그걸 가지고 대화하는 거야. 한 번 해볼래?” “그래 해보지 뭐.” “단어가 여러 개 나올수록 공통점 찾기가 어려울 테니까 일단 두 개부터 시작해보자.” “알았어. 그런데 예전에도 해봤어?” “아니, 너랑 하는 게 처음이야.” “뭐야 그게.” “잠깐만. 앱 실행 중이야. 나름 여러 분야의 단어가 조합될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최근에 더 추가했대.” “엉뚱한 게 나와서 맘에 안 들면 다른 단어로 다시 섞을 수 있어?” “나오는 대로 그냥 해보자. 도망칠 생각 하지 말고.” “도망이라니.” “나왔다. 원..

계곡의 흙냄새 (기다 씨의 상담 일지 #2)

♪ Family of the Year 'Hold Me Down' “계곡에 가면 나는 흙냄새요. 고운 흙은 아니고 작은 자갈과 낙엽이 삭아서 섞인 거예요. 맑은 계곡물에 씻기면서 깨끗하고 상쾌한 냄새가 나요.” “구체적이네요.” “제가 여행을 많이 안 다녀봐서 본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향기를 꼽으라면 그 냄새예요.” “흙냄새가 좋기는 하지만 낙엽 썩은 냄새가 상쾌하다니 좀 의외네요?” “습기가 고여서 꿉꿉한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한 장소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니까 상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표현하기 힘든데 아마 그 장소에 같이 가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럴지도.” “흙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지 않나요? 비 올 때 나..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음악

“여기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주시면 돼요.” “네. 번호 적고... 이름을...” “기다 씨?” “네?” “와. 이름 멋지네요. 이기다 씨” “네. 좀 그렇죠?” “죄송해요. 처음 보는 이름이라. 왠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등록비는 카드로 결제할게요.” “네. 그런데 어쩌다 장구 배울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요즘은 수강생도 별로 없어서 말이죠.” “그게... 저는 뭔가 즉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어서 고민이었거든요. 회사 회식이나 뭐 그럴 때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예전부터 악기 하나는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건반이나 복잡한 악기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 “그리고 예전에 라디오를 많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틀게 된 국악 방송을 한참 들었..

부끄러움의 방문

‘띵 – 동’ “누구세요?” ‘철 – 컥’ “안녕하세요. 저는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네? 뭐요?” “최근에 부끄러운 일 하신 적 있으시죠? 그것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아니... 무슨 단체에서 오신 거 같은데, 뭐 촬영하세요?” “댁이 유명인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 뜬금없이 부끄러운 일 했냐고 물으니 황당하잖아요? 아니다. 관심 없으니까 돌아가 주세요. 그럼...” “황당? 다른 얘기 해드릴까요? 혼자 잘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케케묵은 것들을 기어코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애꿎은 사람들 얼굴에 뿌렸단 말입니다. 그게 더 황당하지 않나요? 누구냐고요? 당신이죠. 직접 경고해주러 온 저를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시네요?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나요?” “아니 뭐 ..

(창작글) 성형하고 싶다고?

"아... 요즘 부쩍 얼굴에 자신감도 없고... 나 성형수술 할까봐." "뭐? 갑자기 왜?" "그냥... 요새 취업도 잘 안되고... 인상이라도 좀 나아지면 어떨까 싶어서" "얘가 핑계 대고있네... 무슨 성형수술이 인생보증수표냐?" "너나 나는 안했지만 주변에 수술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 너도 알잖아 OO 잠수탔다가 수술하고 온거." "그래 알지... 근데 난 누가 뭐래도 내 모습에 만족해" "얼씨구? 아까 TV보니까 모델 최여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던데... 너도 그 과구나?" "그치 난 날 사랑해" "내 말이... 나도 날 사랑하니깐 내 얼굴을..." "뭐야?" "그냥 푸념하는거지 내가 뭐 성형수술 하고싶다고 해서 돈이 있는것도 아니고 말야" "음...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