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2

계곡의 흙냄새 (기다 씨의 상담 일지 #2)

♪ Family of the Year 'Hold Me Down' “계곡에 가면 나는 흙냄새요. 고운 흙은 아니고 작은 자갈과 낙엽이 삭아서 섞인 거예요. 맑은 계곡물에 씻기면서 깨끗하고 상쾌한 냄새가 나요.” “구체적이네요.” “제가 여행을 많이 안 다녀봐서 본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향기를 꼽으라면 그 냄새예요.” “흙냄새가 좋기는 하지만 낙엽 썩은 냄새가 상쾌하다니 좀 의외네요?” “습기가 고여서 꿉꿉한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한 장소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니까 상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표현하기 힘든데 아마 그 장소에 같이 가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럴지도.” “흙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지 않나요? 비 올 때 나..

우울함의 광산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머릿속에 넘실대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요즘의 나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 적으면서 부족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수행의 과정인 듯하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평생 곁에 둔 친구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어렴풋하게 생겨났다. 시간을 보내며 TV 프로그램, 영화, 책 따위를 보았다.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던 중 나는 특유의 ‘우울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실의 실험군과 대조군처럼 대중 속의 나를 발견했다. 가끔은 비슷했으며, 어쩔 땐 극명하게 달랐다.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 중에서 그것이 나쁘다거나, 바꾸고 싶을 만큼 싫다거나 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