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빛나는(光)' 일본판 포스터
(국내 2017년 11월 23일 개봉)
최근 기회가 되어, 영화 [빛나는]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이 리모델링하고 처음 방문한거였는데 아주 깔끔하고 쉼터도 많아 좋아보였습니다. 시사회 때 챙겨주신 기념품인 쯔유와 소바면이 재밌네요. 요즘은 이런 독특한 영화 굿즈들을 많이 나눠주시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사진은 맨 아래)
영화 '빛나는'의 감상 후 든 첫 느낌은 오랜만에 차분한 일본 감성의 영화를 본 것이었다는 거였습니다. 상업영화의 분위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술영화의 코드가 담겨서 작품성도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은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상실'에 관한 코드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시각의 상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우정의 상실 등등... 그런 상실의 과정중에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국내 포털에 적혀있는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 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 포스터의 저 장면(?)이 나오기까지 이게 과연 로맨스 영화일까 싶을 정도로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터 저는 아주 많이 '주관적'으로 영화 본 느낌을 적을 예정입니다. 개인 블로그에 남기는 일반인의 평이기에 아직 영화를 관람하기 전이라거나 비전문가의 평이 보기 싫으신 분들은...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보세요... 그럼 적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아닌 것 같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든 느낌은, 보통의 예술 영화들이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인 행동이나 오브제, 미장센 등으로 미묘하게 감추어 놓거나 흘리는 것에 반하여, '빛나는'은 조금 직접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요소들을 따라가다보니 로맨스 영화가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밀양'의 포스터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라고 적혀 있는데, 그 때 느낀 느낌은 '사랑 얘기가 아닌데?'였습니다. 마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 영화 '밀양'의 포스터
- 영화 '빛나는'의 원제목은 '光(빛날 광, 영어 제목은 'Radiance(빛)')'입니다. '빛'과 '빛나는'은 다른 의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화면에 적힌 '빛' 자체로 받아들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 전반에 깔린 시각과 빛에 대한 캐릭터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빛나는 무언가' 라기 보다는 '빛'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빛나는 이라는 제목도 감성적인 부분을 느끼게 해주어 좋았습니다.
- 시작부터 이 영화는,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그것처럼 눈을 계속해서 클로즈업 합니다. 이것은 시각에 관한 영화, 당신이 보는 것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지속해서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답답한 망원 클로즈업 앵글과 정신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 화면을 보여줍니다. 잠에서 깨어나라고 내 몸을 흔들어대는 친구 처럼, 이 영화는 시각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자극시키며 관객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당신이 그동안 영화를 보던 방식을 버리고 더 깊이 있게 봐주었으면 해'라고 하는 듯이.
- 영화의 시작은 남자 주인공이 극장에 앉는 것으로 시작하고 마무리 되는데, 여기서 저는 감독이 말하고 싶은 내용 중에 관객이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직관적으로 얘기하자면, 감독의 입장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은 현실 속 '관객들'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작성할 때 주제의 위치를 말하는 두괄식, 미괄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앞과 뒤에 같은 장면을 배치하면서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여주인공(미사코)은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성 해설을 작성하는 초보 작가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모니터 요원중 한 사람인 전직 포토그래퍼 남자 주인공(나카모리)을 만나게 됩니다. 나카모리는 전문 사진작가였지만, 이제는 시각을 잃어서 가장 소중했던 인생의 한 부분을 잃어갑니다. 빛으로 순간을 기록한다고 책에서 말하던(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사진계의 거물이었던 남자는 잃어가는 시각을 대신하여 다른 감각들을 총 동원해 사진을 찍어보려고 시도합니다. 카메라에 기대는 모습은 나카모리가 가진 시각에 대한 집착과 몸부림, 두려움도 느끼게 해줍니다.
- 시각 장애인이 어떻게 영화를 대하는가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하는 여주인공. 시각적 창작물을 직접 만들어 왔지만, 가장 중요한 시각 자체를 잃어가는 남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 만큼도 영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미사코'
=
현실의 관객인 '나'
- 특히, 여자 주인공인 미사코는 아마도 감독이 바라는 영화 관객의 바람직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변화되었으면 하는 감독의 마음이 반영된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시각 장애인들의 입장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아(너무 노골적으로 뻔하지만 필요했던) 팩트 폭행 당하는 미사코의 모습은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감독의 유머와 상징이 섞인 장면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미사코는 눈으로 그림을 보고 있고, 시각 장애인보다 더 자유롭게 시각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정확히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면의 이야기는 시각 장애인 보다도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우물쭈물하는 미사코. 통찰력의 부족)
- 이후의 미사코의 태도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영화의 해석을 위해 그녀는 수없이 영화를 다시보게 됩니다. 봐도 봐도 돌아오는 것은 팩트 폭행으로 인한 상처 뿐.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시각 장애인의 마음을 읽어보려는 시도들도 보이는데, 영화에 나오는 모래 때문인지, 그녀는 놀이터의 모래를 손에 흘려보면서 시각 장애인들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시도합니다. 눈을 감고 횡단보도를 건너보는 것도 그녀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감독은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를 볼 때 그런 마음과 노력을 가져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 저는 방송프로그램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했던 교양 프로그램 PD로서, 창작자가 출연자에게 많은 매력을 느끼고 푹 빠져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MBC everyone' 채널의 '비디오스타'에 출연 했던, 광고 천재 '이제석' 씨의 인터뷰가 기억 납니다. 그는 초콜릿 광고를 수주했을 때,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사무실에 초콜릿을 쌓아놓고 하루종일 먹는다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초콜릿 색깔의 변을 볼 정도로 푹 빠져야만 좋은 광고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 미사코의 행동들도 시각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해서 작품에 반영하겠다는 좋은 의지로 비춰집니다. 그래서 저는 미사코의 모습을 보면서 감독이 영화(감독 자신의 작품 뿐만이 아닌)를 보는 관객의 마음이 미사코와 같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각(미학)에 대해 탐구해왔던 사진작가 나카모리
=
영화의 미학과 주제 전달에 대해 탐구해온 감독 자신
- 미사코를 관객에 비유했다고 앞서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관객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맨 첫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인 극장 씬에서 드러나는데, 시각적인 주제 표현 방법을 연구해오던 나카모리(감독 자신 혹은 창작자) 역시 한 명의 관람객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심지어 시각을 잃었다) 굉장히 일본인다운 사려깊은 표현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결국 자신의 입맛대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문학 작품에도 가볍게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작품도 있고, 심도있게 주제를 표현하고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 더 창작자의 의도를 헤아려주고, 영화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느낌과 기운을 받길 바라는 그런 감독의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런 의견의 교류가 더 풍부한 영화 시장을 만들 수 있겠죠.
다른 환경과 입장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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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 예술 영화들은 주로 표현하고 싶은 주제에 상징적인 요소들을 포함한 짜임새 있는 이야기라는 겉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이 영화가 로맨스 라는 장르로 분류되어있다고 적었습니다. 영화 속 로맨스의 지점은 약간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미사코와 나카모리의 공통된 지점인 '일몰'에서 로맨스의 클라이막스가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제가 과다하게 해석하는 부분라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감독 자신이 원하는 '관객과의 소통'을 로맨스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것 역시 그냥 제 머릿속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의 출발점은 이렇지 않았을까 떠올려봅니다. 아마도 감독은 앞서 말한 '창작물'과 '감상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최초 기획한 후에 주제를 표현할 스토리텔링 요소들을 떠올리며 '시각 장애'에 관한 것과 '로맨스'라는 서사를 입힌것이 아니었을까요? 만약 이 영화가 '시각 장애인이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하여 표현하자!'라는 것으로 출발한 것이었다면,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약간 유머스럽다고 느낀 장면도 있었는데(실제로 영화에선 덤덤하게 나오는 장면이지만) 바로 후배와의 술자리 장면입니다. 시각 장애인이 된 선배 앞에서 유명 잡지의 커버를 찍었다고 자랑하는 후배는, 어떤 사진인지 설명해달라는 선배의 말에 자신이 담고 싶었던 느낌을 설명해줍니다. 이 부분은 미사코가 시각 장애인들에게 장면을 '보이는 그대로' 설명해주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시각적인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사진에서 느껴지는 '느낌(분위기)'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아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술 영화가 시각적인 것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후배가 찍은 패션화보는 시각적 화려함을 표현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조금 다른 관점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적인 화려함에 포커스를 맞춘 후배 조차도 나름의 전문가로서, 무엇이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방식은 미사코 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미사코가 시각 장애인들에게 두 세번째 팩트폭행(?)을 당한 뒤 나오는 장면이라 더 대조되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후배는 이후 역할도 있는데 이 부분까지 너무 자세히 적으면 왠지 읽으시는 분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여기까지만 적어둘까 합니다 :)
- 영화 후반부, 두 개의 오브제가 중요한 표현을 하는데, 하나는 나카모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무엇인지는 쓰지 않겠습니다.)을 버림으로 인해서 나카모리는 짐을 덜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의 시각(마음)을 열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나카모리가 시각을 잃은 상태에서 찍은 '미사코'의 사진인데, 그냥 사진만 놓고 본다면 포커스가 맞지 않은 다소 괴상한 사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을 찍던 나카모리의 마음, 그 사진을 전해주고 싶어했던 나카모리의 마음은 사진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 'Andre Kertesz' (1894-1985)
첨부된 사진은 영화에 나오는 것은 아니고, 제가 좋아하는 사진 작가 '앙드레 케르테츠'의 말년 작품입니다. 그는 헝가리 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말년을 뉴욕에서 보내게 됩니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집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높은 층의 집을 구하고, 집 근처의 마켓에서 구한 유리 오브제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합니다. 빛이 투과하는 사람 형상의 유리에 그의 감성이 묻어납니다.
영화 속에서 작은 프리즘 구슬이 창가에 걸려있는 나카모리의 방이 나옵니다. 시각을 잃어가며 아름다운 무지개 빛을 볼 수 없지만 미사코의 설명을 들으면서 언어로 해석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앙드레 케르테츠 작가의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이 역시 영화에서는 인물의 가까워짐 정도로만 비춰지는데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됩니다. 미사코가 시각 장애인을 이해하는데 한 뼘 성장했다는 것(통찰력의 성장)과, 나카모리 역시 본다는 것은 눈으로만 보는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변화하는 지점을 표현했다(새로운 시각의 성장)고 생각합니다.
▼ 시사회 티켓과 서울극장의 모습. 기념품인 쯔유와 소바면 :)
영화를 덜 지루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미사코의 '엔딩 코멘트에 대한 고민'은, '빛'이라는 것의 양면성을 모두 의미하면서 마무리 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빛'은 미사코의 첫번째 해석처럼 희망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중간의 대사에서 '싫은것도 보게 만드는 것이 빛'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정확한 대사는 아닙니다. 기억이...) 영화 속의 영화에서 엔딩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되는 '빛나는'은 관람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당신에게 모두 말 했습니다. 이제 당신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창작물들을 보고 해석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당신 삶에 크고 작든 어떤 유의미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너무 멀리 갔나요?)
현대 무용가 '안은미' 씨는 예전에 '망치'라는 행위예술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상의를 탈의한 채 양 손에 망치를 들고 춤을 춥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 공연을 보는 관람객들이 '망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망치에 손을 다친 기억을, 누군가는 망치와 관련된 다른 기억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처럼 한 편의 영화를 봐도 자라온 환경과 배경 지식이 다른 관람객들은 제 각각 다른 해석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빛나는'은 오랜만에 길게 리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저는 영화 감독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컨텐츠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평소 가졌던 고민을 이 영화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개인적인 해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빛나는의 예고편 조차 보지 못한 채 관람하였고, 그 속에서 개인적으로 떠올린것만 가지고 쓴 리뷰입니다.(조금 무성의... 한가요?)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 기준의 해석은 이런 느낌이었지만, 다른 관객들과 감독님의 입장은 또 아주많이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제 글을 엉뚱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장문의 글을 블로그에 쓸 때마다 뭔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통찰력 있는 척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길게 늘어뜨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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