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브리 향수를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메리와 마녀의 꽃]

CP83 2017. 12. 12. 15:35

<< 영화 후기를 적을 때 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상물과 제작에 관심이 많은 저는 스스로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오늘도 주절주절 적어봅니다. 본문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 전이라면 읽지 말아주세요. 그럼, 감독님과 스텝들의 노고가 담긴 사랑스런 작품 '메리와 마녀의 꽃'에 대한 제 나름의 후기를 적어보겠습니다. >>







어제 밤에 기다리던 '메리와 마녀의 꽃'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마니의 추억'을 인상깊게 봤던 저는 차기작인 이번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우와 저 꽃 하나에 얽힌 어떤 비밀들이 있길래 저런 난리가 난 것일까... 궁금증을 마구 유발했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들이 눈에 밟혀 블로그에 기록해둘까 합니다.




▲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상깊었던 오프닝 씬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분명히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건강하고 정직하고 사랑스러운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작품은 지브리의 향수를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브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수련했던 감독이기에 그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타겟층'을 확실히 다르게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이 영화의 타깃은 이런 영화를 처음 보는 어린 관객들이 아닐까? -




'메리와 마녀의 꽃'은 이런 판타지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 관객'에게 초점을 맞춘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성인 관객에게는 크게 필요없는 설명이나 과도한 대사와 액션, 카메라 워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까지는 거의 단순 나열에 가까울 정도로 새로운 장소나 인물을 연속적으로 배치합니다. 영상물을 많이 접한 성인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린이 관객이라면 아마 성인과는 다르게(흥미를 유발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최근에 다시 봤던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막판에 아쉬운 작품활동을 했을지언정 탁월한 연출가로서 아동과 성인을 모두 사로잡는 이야기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비교해보자면 메리와 마녀의 꽃에는 영화적인 연출기법으로서의 긴장감 유발 요소가 적습니다. 소설 원작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고...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위의 영상으로 첨부한 장면입니다. 주인공이 건물 외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던져주는 유머러스한 장면입니다. 위의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관객은 저 짧은 한 장면을 통해 순간적인 '놀람, 공포, 끝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불안, 긴장, 안도, 웃음' 등의 감정의 파고를 겪게 됩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상쇄해주는 아주 멋진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스필버그의 전성기와 닮았다) 이런 연출이 곳곳에 들어가게 되면, 주인공의 리액션과 앞뒤 상황에 따라 캐릭터가 단단해지고, 연출자는 관객의 지루함을 상쇄시켜 다음 장면의 진행에 있어서 여유를 얻게 됩니다. 반면, '메리와 마녀의 숲' 초반에 메리가 물건 상자를 들어올릴 때, 쏟아지겠구나 하는데 역시나 쏟아집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해줄만한 작고 큰 반전들이 있어주면 좋겠는데 저 스스로는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동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지브리 향수를 기대한 저 같은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주는 한 가지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과도하게 이름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이 점이 두드러져 보인 것은 아무래도 영화 초반에 주인공 '메리'에 대한 인물 설명을 해줄만한 씬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잡다한 것들을 설명하는 동안(강아지는 무엇을 위해 나온 것이었을까...) 정작 메리에 대한 배경이나 내면의 상태 등이 진득하게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시각적인 것으로 연출한다는 것은 상당한 노련미가 필요한 내용이겠죠, 감독의 전작인 마니의 추억에서는 이 점이 탁월하게 느껴졌기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사실, 마니의 추억에 대해 깊이 말하자면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울만한 여지를 많이 준 연출이 좋았던 것이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너무 생략을 많이 한게 아닌가 싶기도...)


감독은 전작인 마니의 추억에서의 결말과 비슷한 부분을 영화 중간에 삽입함으로써 나름의 자기 복제를 하고 맙니다. 이 부분은 저 처럼 마니의 추억을 보신 분들이면 영화 초중반에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인데 중요한 한 캐릭터가 있다는 정도만 얘기하고 아직 관람 전이신 분들을 위해 넘어가겠습니다.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전반적으로 영상물을 즐겨보는 성인이라면 스토리와 반전의 예측이 너무나도 쉽게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긴장감을 많이 갉아먹는 요소가 되기도 하겠죠.









영화에서의 긴장감이라 하는 것은 한 씬에서의 오락적 긴장감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편적인 감성의 소유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나홍진 감독 스스로 영화 제작에 있어서 영화의 각 장면과 흐름에 관객이 어떤 감정의 기복을 느낄지 상상해보고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메리와 마녀의 꽃은 특별한 감정의 기복, 긴장감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아주 약간의 유머 정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사실 따지고 보면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영화가 좋게 평가받는 이유는 관람객을 감정의 파고 속으로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서스펜스와 유머의 대가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재미라는 것이 웃음코드만을 말하지 않듯이, 웃음 또한 단순하게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놀라움, 안타까움, 슬픔, 신기함, 웅장함, 답답함, 어지러움, 시원함...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게되는 영화가 진정한 재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는 방식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메리가 갑작스럽게 빗자루를 타고 마법 학교에 가는 장면은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부분인데, 시나리오에서 웅장하게 묘사되는 몇 줄을 영상미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화면에 보여지는 주인공 메리의 태도는 두려움, 놀라움, 신기함 등의 표현 보다는 덤덤하게 '꿈이다'하는 정도로 넘어간다고 느껴졌습니다. 특히 공중에 떠있는 학교 도시를 보면서 '와 엄청 크다' 라는 영혼없게 느껴지는 단순하고 불필요한 대사를 하면서 디테일함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해리포터를 연상시키는 학교의 풍경 역시 말 그대로 풍경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더 기발하고 구체적인 수업 내용을 보여줬다면 더 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이미 판타지 세계관의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는것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덧. 초반, 고양이의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도 관객에게 다소 의아함을 주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영화를 보고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보는 당시에는 몰입에 조금 방해가 되었다는 개인적인 생각...)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도 모호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연출상의 이유로 그랬던 것일수도 있겠지만, 주인공이 가진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인지, 친구에 대한 소중함을 표현하는 것인지 조금은 확실한 매듭을 지을 수 있는 부분을 한 두 번의 대사로 흘리고 맙니다. 특히, 메리가 '마법은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부분은 영화 초 중반에 메리의 캐릭터에서 잘 보여지지 않았던 가치관으로,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결말을 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인 것은 알겠으나, 연출상의 힘은 얻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영화 주인공(주제)의 생각 흐름을 정리해 본다면...>

- 메리는 자신의 빨강머리에 콤플렉스가 있다

- 메리는 마법학교에서 모두가 자신의 빨강머리를 칭찬하는 것이 좋다.

- 메리는 마법으로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낀다.(박사가 변신 마법에 빠져있다는 것이 나오지만 크게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

- 메리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캐릭터가 나타난다(피터이지만 이것 역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

- 메리는 변화를 시도해보다가 생각의 전환을 맞는다.(이 부분은 영화의 오락적 흐름을 위해서 생략되었다고 봐도 무방... 변신마법 동물의 구출이 이 기능을 할 수도 있으나...)

- 메리는 마법이 필요없으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 자존감의 회복과 성장(역시나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



* 꽃 때문에 생긴 갈등 구조, 동물 구조씬 등 오락적인 부분과 주제의식이 조금 더 찰떡같이 결합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으나... (이런 면에서 센과 치히로... 는 오락과 주제의식이 잘 결합된 대단한 작품)


*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것 뿐, 큰 의미는 없습니다... 




앞서 저는 마니의 추억을 인상깊게 봤다고 말했습니다. 마니의 추억은 마니라는 존재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긴장감으로 영화를 지탱합니다. 생략된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 재미가 증폭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략하고 관객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이 섞이면서 다소 아쉬움이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일어날 때, 다른 관람객들 중에 '생각보다 재밌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나빴던 인터넷 평점을 보고 영화를 관람하셨던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일반 관람객들의 눈에는 충분히 재밌는 작품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인터넷 영화 후기와 평점을 살펴보면, 지브리 향수를 기대한 저 같은 팬들은 다소 실망한 듯 하지만, 함께 데려간 아이들은 만족했다는 평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느꼈던 아쉬운 요소들은,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타깃의 관람객들에게는 전달력 있는 문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괜스레 비교하게 된 계단 장면. 더욱 아찔하고 무섭게 연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님은 다른 관점으로 연출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내 멋대로 상상하고 영화를 봐버린 것이 문제... -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연출자들은 허투로 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찌 되었든 타깃과 예산의 범위 등등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했을 수 있겠죠. 찬찬히 생각해본 '메리와 마녀의 꽃'은 아무런 외부 편견이 없다면 충분히 잘 만든 전체관람가 오락 만화영화입니다. 제가 메리와 마녀의 꽃을 보고 느낀 아쉬운 점은 '지브리 출신의 감독이니, 지브리 풍의 향수를 느낄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겠어?'라며 제 스스로 멋대로 혼자 상상했던 것 때문에 일어난 오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니의 추억에서 옛날 추억과의 이별을 선언했다면, 아마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옛날의 요소를 가져와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것은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튜디오 포녹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메리와 마녀의 꽃을 보고 나서, 옛 지브리 영화들을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놀라운 이야기와 연출력은 한동안 보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스튜디오 포녹의 작품을 기대해보며 옛 작품들을 종종 다시 봐야될것 같습니다. ^^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실 분들, 폭력적이지 않고 건강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