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 부터 봐야지 하고 체크해 두었다가 이제서야 본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영화를 보고난 첫 인상은, 자칫 지루하고 평범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굉장히 세련되고 꼼꼼한 연출로 영화 자체를 흡인력 있고, 먹먹하게 그 힘을 극대화 시켰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게 만든 요소들을 나름 공부한다고 생각하면서 몇 가지 적어보기로 했다. (이번 리뷰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것을 장황하게 써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공부한다 치고 이것저것 기록해둔다는 의미로 써보기로 한다.)
▲ 멀리서 관찰하는 듯한 모습의 초반 장면과 편집이 좋았다.
영화 초반부에서 나타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힘 없는... 힘 없다기 보다는 세상의 모든것에 흥미를 잃은듯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자들의 추파에도 관심 없고, 목소리 조차 풍선에서 새어나오는 바람 처럼, 힘 없이 그저 필요한 말을 할 뿐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술을 마시다가 시비를 걸면서 관객들은 그 사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술집에서의 씬은 작은 반전을 심은 연출로, 주인공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기능적인 면도 있으면서, 이 영화가 지루하지만은 않은 영화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 장면이었다.
주인공 리는 내세울 것 없는 잡역부로 일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듣고 병원으로 향한다. 영화상에서 주인공은 무슨 내용인지 알고서 병원으로 향했지만, 관객들은 무슨 전화를 받았는지 병원에 왜 갔는지 모르는 상태다. 병원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관객들은 '아, 주인공의 형이 죽었구나. 과거에 아팠던 모양이구나' 하면서 하나 둘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는 이런식으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진행시키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주 특출난 방법도 아니고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쓰는 방법이지만, 일단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삶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관객을 멍하니 쉬지 않게하는데 일조한다.
영화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편집의 힘이 컸다고 생각했다. TV 프로그램과 달리 과거와 현재의 배치를 편집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완성된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에서의 편집은 과거와 현재의 병치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현재 주인공의 감정을 더 강하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고, 지루함을 상쇄시켜주고, 이어 나올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바로 보여준다는 느낌도 있어서, 마치 내가 그 상황이라도 저럴 수 있겠다는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올해 초에 봤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가 생각나기도 했다. 컨텍트의 원작은 단편 소설인데, 저자가 말했을 정도로 영화화 하기 쉽지 않았을 소재와 내용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탁월한 연출(특히 편집)로 그 구성을 흥미롭고 가볍지 않게 만들어 낸 수작이었다. 그런 면에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역시 '편집(이야기 구성)' 부분에서 배울 점이 많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시간을 뒤 섞는다고 능사가 아니라 관객이 생각할 여지를 계속해서 던져주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들었다. 특히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마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빠르게 교차편집한 순간은 주인공의 감정 표현을 극대화 시키면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주인공과 친한 인물과의 이별(죽음)을 더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을 때는, 이별의 대상과 친밀했던 과거를 처음에 배치하고 그것을 쌓아올리다가 이별 시킴으로써 그 이별의 순간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쓰곤 한다. 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에서는 반대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상태의 주인공 모습을 보여주고 궁금증을 유발한 뒤 과거의 상황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한 번에 이렇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감정선에 맞춘 현재와 과거의 조각들을 유기적으로 잘 배치한 느낌이 든다. 앞서 말한것 처럼 특출난 기법도 아니고 많은 영화에서 사용하는 연출, 편집 방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관객의 감정선을 어떻게 들었다 놨다 하느냐 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는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 단락에서 말한 구성 방법은, 영화 초반에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다소 실패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본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특히 초반에 등장하는 잡역부의 모습과, 성적인 추파를 던지는 주변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출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전반적으로 보면 주인공 리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면서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약간은 유머스러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다른 주인공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영화를 떠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 중에 최고의 연기는 무표정 연기라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이 무표정 연기에서 굉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사연있을 것 같은 얼굴의 느낌인데다 힘 없는 목소리가 잘 매치되어 영화 초반부터 주인공 리의 분위기를 단숨에 만들어낸다. 아쉽지만, 주인공 리 역을 맡은 케이시 에플렉은 벤 에플렉의 동생으로, 성추문 사건으로 난리였다고 하는데 이 사실은 내가 나중에 영화를 보고 검색하다 알게된 것으로, 영화 자체만 놓고 몇 자 남겨두었다. (다른분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한국 영화배우 이병헌 씨를 떠올리게 되었다. 안타까운 부분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력 만큼은 정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것은 영화를 덜 지루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만약 영화 초반에 주인공에게 흥미를 가지게 됐다면 관객은 이 영화의 끝은 어디로 향해 가는걸까? 하고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이미 그 영화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이전전 단락에서 말한 '탁월한 감정선'에 대해 더 말해보자면... 보통의 인간이 살면서 겪는 보편적인 순간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느낄만한 어린시절, 친구들과의 추억, 연애, 결혼, 출산, 양육, 늙어감과 죽음 등이 있다. 이런 일상의 순간들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경험과 깨닳음을 영화에서 자주 사용한다. 보편적인 감성의 코드를 녹여냄으로써 대중의 감정 이입을 쉽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꼬여있는 혈연관계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말한 이 영화가 자칫 평범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는 이런 부분 때문에 생각난 말이었다. 너무나 많이 사용된 이야기들이라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에서는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생소한 상황들이 적절히 잘 조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꽤나 현실적인 주제였기에 보편적인 감성을 잘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례 절차와 관련해서 조카와 말다툼 하는 부분이나, 조카의 여자친구가 생각 없이 돈이 문제야? 하는 부분 조차도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나가는 행인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오지랖을 부리는 장면도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글솜씨가 없어서 장황하게 적고있지만 그런 요소들과 연출, 연기력, 편집 등이 어우러져 탁월한 감정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게도 그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면 그것이 보편적인 감성을 잘 건드릴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배를 타고 낚시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화면상에서는 형이 없어졌을 뿐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리의 자녀들도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어머니의 이름이 쓰여진 배에 새 엔진을 얹어서 출항한 그들의 뒷 모습에서 이렇게 또 세상 속에서 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발견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남성적이면서도(내용) 섬세한 감성(스토리 텔링)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끔 던져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먹먹한 영화였다.
* 현재, 유튜브에서 한화 2,500원에 구매나 대여를 할 수 있다.(왜 똑같지? 그렇다면 당연히 구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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