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33

[돈, 섹스, 권력] 리처드 포스터, 두란노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던 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우리가 돈이나 명예 같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서 초연해지는 혹은 그런 가르침을 다 받게 된 이후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전적인 것들을 많이 허락하실 것이라는 그런 얘기였다. 나는 돈(물질)이라는 것이 주는 악한 기운에 대해서 어떻게 멀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많았지만 맹목적인 절제라는 것 외의 방법 따위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단지 지금의 나는 영적인 초심자로서 여러가지 방면에서 나를 하나님께서 교육시키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도 그렇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에 띈 기독교 서적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제목은 '돈, 섹스, 권력(리처드 포스터, 두란노)' 이었다. 저자는 주는 행위가 물질의 구속을 ..

내 주변에는 없다.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관심사에 대해 깊이 나눌 대화 상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어떤 자연스러운 사실들이 있다. 흔히 공감대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어떤 출연자가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해보자. A그룹에 갔더니 맛있는 △△에 대한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따분함을 느끼고 B그룹으로 이동하자 멋있는 □□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C그룹에 갔더니 특정 ○○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주인공은 계속 A, B, C 그룹을 돌아다니며 대화에 껴보지만 실은 별로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적다 보니 따분한 구성의 무대인 것 같다. 공개 코미디 무대로 비유한 이유는 각각의 개인이 겪었을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익숙한 포맷으로 표현해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의 예시를 ..

‘습관성 미안함’ 가진 PD가 생각하는 ‘방송 연출’ (이제와 반성문 길게 쓴다고 잘한 것은 아니지만)

TV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험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 다르게 일종의 ‘반성문’을 쓰게 되는 기분이다. 알게 모르게 방송 때문에 도움 주신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들이 많을뿐더러, 개인적인 성취의 부족과 시스템의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음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작업해온 ‘방송 연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적기 전에 먼저 찾아본 사전에는 연출을 ‘대본이나 현실(팩트)을 가시화하는 작업’(영상콘텐츠제작사전 참고)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더해서 ‘방송 연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고 싶다. 「생각과 글의 내용, 느낌이나 분위기, 어떤 의도 등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개념적인 것들을 영상과 소리에 기반하..

‘눈물 편집’에 관한 부끄러운 고백 (때로는 시청률보다 출연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내가 제작했던 프로그램 프롤로그 중에 ‘눈물’로 시작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극적인 인터뷰와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한 시간짜리 영상의 시작으로 강렬한 첫 카드를 던지고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롤로그는 해당 회차의 화두를 던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만들어지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프롤로그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나열하는 하이라이트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결론을 다 지어놓고 이유를 파보는 추리 영화의 첫 시퀀스가 될 수도 있다. 형식은 파괴되고 있고, 연출의 제약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첫 장면부터 눈물을 흘리는 일반인 시청자의 모습이란…. 이제 와 다시 보니, 그것만큼 부담스럽고 보기 민..

PD 입봉 후 직면한 ‘결정 장애’ (창의적인 명확함이 필요한 직업)

프로듀서(PD)와 연출자 본연의 역할은 별개이지만 보통의 방송 PD는 그것을 겸한다. 프로듀서로서 기획 및 제작 총괄, 연출자로서 무형의 결과물을 유의미한 그림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외주 프로덕션의 PD였던 나였기에 그 의미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PD로 입봉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직면했던 것은 ‘결정의 어려움’이었다. 연출의 방향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정에 익숙지 않아 생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그 당시,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카메라 감독님과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음식과 풍경을 담는 촬영이었는데, 필요한 컷들의 사이즈, 앵글, 움직임에 대해 자신감 있게 설명드리지 못..

관찰자로서의 방송 연출 (동료들은 다 아는데 이제야 정리해보는 관찰의 개념)

나는 사람들의 행동,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 존경받는 희생의 이타적인 판단까지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원활한 편집을 하려면, 촬영 단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잘 담아야 한다. 어떤 ‘행동’(움직임 그 자체 혹은 의도)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처럼 컷과 컷의 작은 단계부터, 신과 시퀀스의 굵직한 덩어리까지 주제를 향한 ‘액션과 리액션’의 협응이 필요하다. 내용이나 느낌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액션만 계속 발생되는 장면의 연속은 의도된 연출에 의해서 강렬하고 특이한 느낌(주로 광고, 뮤직비디오)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삶 자체도 행동과 반응의 연속이며, ..

어린이날 단톡방에서 발견한 내 모습 (30대의 성장이라는 것)

어린이날 저녁.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빠들 다 고생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야기 주제였다. 서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어린이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싱글 친구들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들은 고생했겠구나 한 마디 적어둔 뒤 조용히 있었다. 문득,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좀 더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에 다녀왔다. 30대 중반인 친구들은 지금 육아에 빠져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녀가 주는 기쁨과 피로함이 담긴 일상에 대..

책임 없는 돌멩이

어떤 사람들은 명쾌한 것을 좋아한다. 이분법적인 질문 공세로 나를 괴롭게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조언들. 듣고 싶었던 말을 절묘한 타이밍에 만난 것 같은 순간의 착각. 언어의 명확하지 못한 성질 때문에 질문과 의심이 끝날 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뚜렷하지 않다. 온갖 미생물이 섞여 있는 한여름의 연못. 누군가 당신에게 던진 조언과 질문 속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똥을 싸고 날아가 버린 비둘기. 몸속의 호르몬은 수용체와 모양이 꼭 맞아떨어질 때만 작동한다. 스쳐 가는 조언은 분별력과 꼭 들어맞아야 효과를 발휘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조용한 폭발. 누군가, 언젠가, 언어라는 소통 수단 말고 좀 더 정확하고 직관적인 무언가를 발명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인간의 삶은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필요 ..

미인대회 폐지 말고 (방송의 매력 상품화에 관한 대화)

“왜 요즘엔 미인대회를 안 하는 걸까?” “글쎄. 성 상품화 그런 것 때문에 사라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근데 나 어렸을 때 내 주변 어른들이 미스코리아 나가보라고 했었거든. 얼마 전에 그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가만 보니까 언제부턴가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 대회를 볼 수가 없더란 말이지.” “미스코리아? 으하하. 진심 아니지? 슈퍼모델 대회는 케이블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던 듯?” “야!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이런 상태고….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졸라서 화장하고 찍은 사진도 어디 남아 있을걸? 그땐 진심이었다고. 아무튼, 노골적인 성 상품화는 눈살 찌푸려지는 거니까 사라져야 하는 게 맞겠지. 근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이성에 대한 매력을 뽐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군대 꿈을 꾸었다 (접어둔 걱정을 읽고 위로를 받다)

군대 꿈을 꾸었다. 어스름한 여름 저녁.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대 복귀에 늦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부대에 도착하니 전쟁에 준하는 어떤 비상 상황이 발령되었다. 꿈이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상급자로부터 늦게 복귀한 것에 대한 핀잔을 들었지만,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크게 혼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사용했던 개인 비품과 장구류들을 모두 버렸으니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늦게 복귀했다지만 너무 하잖아?’ 어찌 됐든 비상 상황이었고 부대는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서둘러 물건을 찾으러 갔다. 도착한 장소는 쓰레기 매립지처럼 넓어서 내 물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