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9

의미 없는 것들로 부터 위로 받는 시대

“오랜만이다.” “그래. 뭐 얼굴을 보니 별 일 없었던 모양이군.” “음...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결국엔 널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긴가...” “뭘 또 그렇게 까지 얘기 하냐? 그냥 하는 소린데” “응. 알지. 근데 요즘에 좀 뭔가 꽉 막힌 느낌 같은 게 들어서 말이야.” “꽉 막힌 느낌?” “왜 한창 여론에서 소확행이다. 먹방이다 뭐 이런저런 것들이 유행하고 있잖아? 서점에 가면 힐링이다 위로다 하는 에세이가 인기 많고” “이제 세상 돌아가는 게 좀 보이는 모양이지?” “그게 실은 나한테도 작은 위로를 주는 일들이었거든. 근데 뭔가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까 그것들도 결국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확 드는거야. 좀 소름 돋게 말야.” “왜? 너 자신에게 어떤 만족감이나 ..

어중간한 재능 (재능의 발견 과정과 실패. 친구와 대화 후 남겨진 생각들)

친구는 이상적인 세상과 현실 속 세상, 사회적 시스템의 부조리함 등 여러 가지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정부의 교육 슬로건 이자 그 친구가 믿었다던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세상'이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세상" 당시 힙합 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녹음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업로드를 하고 나름의 순위권에도 진입했었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들려준 적은 있었어도 이렇다 할 크고 굵은 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그 당시 그런 걸 했었지 정도로 기억은 하고 있는 정도였다. 친구들은 몰랐지만 본인 나름대로는 열심을 다해 기획사에 노래를 보내 보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한다. 하지만 큰 수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퐈이야

“네.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아까 마지막에 대답한다고 하셨죠? 어떻게 생각이 좀 나셨나요?”⠀“아... 네. 좀 전에 인애 씨가 선물 얘기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갑자기 생각이 하나 나긴 했는데요.”⠀“드디어 말문을 여시는군요? 모시기 어려웠던 만큼 토크 주제도 과연 궁금해지는데요?”⠀“사실 별건 아닌데요... 제가 예전에 친구 100일 잔치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었는데”⠀“100일 잔치 선물 얘기군요?”⠀“맞아요. 선물을 아기 용품이 아니라 그 당시에 제가 좋아했던 인센스라고...”⠀“인센스가 뭐죠?”⠀“피우는 향의 일종인데... 동남아 같은데서 많이 맡아보셨을 거예요. 아로마 느낌 나는 피워두는 향. 우리나라에서는 절 냄새 난다고 안 좋아 하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강아지

“왓! 깜짝이야.” “왜 그래?” “아니, 당연히 유모차 안에 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웬 강아지가 들어가 있네?” “뭐라고? 요즘 아기처럼 키우는 강아지들이 얼마나 많은데 새삼?” “그랬나? 나 이런 거 처음 봐... 근데 진짜 귀엽다. 사람 아기 같아. 똘망똘망하게 웃잖아.” “이러다가 정말 강아지들이 사람처럼 말 할 것 같지 않냐?” “뭐, 진짜 그렇진 않겠지만 강아지 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아주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니려나.” “당연히 농담이지. 어떻게 강아지가 사람이 되겠냐.” “그렇지?” “아기랑 강아지가 똑같은 환경에 태어나서 둘 다 인간의 손에서 길러진다고 생각해봐.” “갑자기 또 진지해지네;” “둘 다 분유 먹고, 이유식 먹고 무럭무럭 자랐어. 그렇다면 둘 다 같은 지능을 가진 ..

가짜가 주는 씁쓸한 행복 (양산형 복제품이 주는 행복과 슬픔)

"저 아파트 진짜 오래됐나 보다. 페인트도 벗겨지고 녹물 흐른 자국도 많고... 다시 칠하기 버거워서 그냥 두는 걸까?" "그래 이 동네가 좀 낡긴 했지. 재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난 이상하더라." "뭐가?" "외국에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반해서 한국에서 근대화되면서 지은 건물들은 조금만 지나면 흉물스러워 진단 말이야." "한국에도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도 많이 있지 않나?" "응 맞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어째서 어떤 건물은 오래될수록 멋져지고, 어떤 건물은 흉물스러워 지냐는 거지."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거 얘기해줄까?" "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었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비슷한 맥락이..

사랑과 신뢰, 다음 단계

"이런 갈등 생길 거라고 어느 정도는 다 예상하고 있었잖아. 우리는 안 그럴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우리도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평범한 인간이야." "그래. 내 자신이 참 무력해지는 말이긴 한데... 웃긴게, 다시 회복될 거라는 걸 또 알고 있으니까." "응. 각자 시간을 좀 갖자... 보통 이 말이 드라마 같은 데서 헤어지자는 의미로 쓰이는데 우리한테는 좀 다른 것 같아." "알아." 사랑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고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 사랑이 익숙해지고, 관계의 토대가 되어 우리 둘의 발 아래에 다져졌다. 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어쩌면 사랑보다 더 강력한 관계의 끈은 신뢰한다는 감정 아닐까. 아니, 신뢰가 사랑..

이상형이 없어요

친구와 얘기하다보면 가끔 나오는 화제, '이상형' 문득 친구가 내 이상형에 대해서 물어보자, 나는 딱히 정리된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하고 만다. '뭔가 말로 잘 정의하지 못하겠다.' 이상형이라고 정하는 것이야 외형적인 어떤 한 부분이나, 성격적인 어떤 한 부분을 정해놓는 것 정도일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상형의 한 부분이 맘에 드는 사람일지라도 여러가지 그 사람의 분위기와 행동 등 많은 요소들이 매력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형이라는 말 자체가 뭔가 맞지 않는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차가 있는것일 뿐이다. 누군가는 어떤 한 포인트에 매력을 느껴서 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냥 몇 번 겪어보다가 매력을 느끼면 그 사람 그대로의 색깔을 좋아하게..

(창작글) 성형하고 싶다고?

"아... 요즘 부쩍 얼굴에 자신감도 없고... 나 성형수술 할까봐." "뭐? 갑자기 왜?" "그냥... 요새 취업도 잘 안되고... 인상이라도 좀 나아지면 어떨까 싶어서" "얘가 핑계 대고있네... 무슨 성형수술이 인생보증수표냐?" "너나 나는 안했지만 주변에 수술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 너도 알잖아 OO 잠수탔다가 수술하고 온거." "그래 알지... 근데 난 누가 뭐래도 내 모습에 만족해" "얼씨구? 아까 TV보니까 모델 최여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던데... 너도 그 과구나?" "그치 난 날 사랑해" "내 말이... 나도 날 사랑하니깐 내 얼굴을..." "뭐야?" "그냥 푸념하는거지 내가 뭐 성형수술 하고싶다고 해서 돈이 있는것도 아니고 말야" "음...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끊임없이 죽음을 거부하는 존재

"아오, 이거 마시니까 살 것 같다."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그냥, 하루 종일 청소하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 "이사할 오피스텔은 아직도 정리 안 끝났어?" "말이 오피스텔이지, 전에 쓰던 사람이 얼마나 시궁창으로 만들어놨던지... 말도 마라." "그래서 좀 싸게 들어갔다며." "그렇긴 하지. 하하." "근데 이 커피 평소랑 좀 맛이 다른 거 같지 않아?" "그런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차갑다는 거 말고는 못 느끼겠어. 흐흐" "그냥 뭔가 좀 오래된 느낌도 나고... 기분 탓인가." "아, 맞다." "갑자기 뭐가?" "아까 오피스텔 베란다 안쪽에 곰팡이 엄청 핀 것들 다 긁어냈거든." "곰팡이?" "그 베란다 안에 작은 창고 같은 게 있는데, 여름에 물이 샜는지 곰팡이가 엄청 덮여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