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13

섭리적 우연

“너는 오페라나 뮤지컬, 클래식 공연 같은 거 보러 간 적 있어?” “회사에서 문화생활하라면서 단체로 보내고 그랬는데, 나는 취향이 아니라서 안 갔어. 근데 왜?” “요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주식도 모르고 골프나 스키 같은 것도 탈 줄 몰라. 카지노에 가본 적도 없고, 번지점프를 해본 적도 없지. 뭔가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내가 아는 세계보다 모르는 세계가 더 많은 기분이었어. 그런데, 내가 몇 년 전부터 큰 맘먹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한참 재미를 느끼면서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그동안 내가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수영은 왜 재밌는 걸까?” “수영이 맞았나 봐?” “응. 학교 다닐 때부터 축구나 농구, 족구, 심지어 탁구 같은 구기 종목은 ..

나를 바보로 만드는 사람 인식하기

만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내 주변에 아주 가끔 있다는 것을 ‘인식’만 겨우 한 상태라서 그 사람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더 성숙해진다면 그 어떤 파도라도 부드럽게 품는 해변 같은 사람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테지만, 유독 나의 마음을 괴롭힌 사람의 유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상 적으려니 까다롭긴 한데 굳이 정리한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행동(부추김)한다. 그런데 정작 쌓여온 감정(긍정, 부정)을 그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는데?’라고 반응한다. 잡아떼는 느낌 이상의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발견의 기회를 가진 당신은 즐거울 예정인 사람) SNS에서 보게 된(추천된) 여러 사람의 글, 만화 중에, 자기 자신의 취향 없음 또는 자기 확신 없음에 대해 아쉬워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나 또는 누군가는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나만의 취향이 엿보이는 특징적인 물건이나 옷도 없고, 자주 가는 멋진 카페나 미술관도 없으며, 남에게 추천해줄 맛집도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 작가나 글귀를 외지도 못하고 그저 밋밋하게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단지 무엇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도 우물쭈물하고, 다들 좋다길래 가봤더니 별 것 없어서 실망만 남기도 하고, 거침없이 대화를 이끄는 사람에 주눅 들어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오고, 남에게 나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보..

같은 것을 보는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속물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때,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가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동경하고 있는 그런 사람,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 위에 서 있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데 갈 길이 멀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모모의 주인공처럼 한 발짝 앞만 바라보면서 계속 청소해 나갈 뿐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단 한 번의 벼락을 맞아 달라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체험이 없는 대신, 조금씩 변화되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약하게 주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나만의 테마가 될 수 있는 글귀나 문장을 책상 근처에 붙여두고 있다. 작년에는 '몰입',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내 주변에 있다.' 이런 말..

‘부럽다’ 대신 ‘대단하다’로 고쳐 쓴 메시지

신학대학교 입학을 준비해오던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 친구는 경험 삼아 입학시험을 본 상태였고, 아무래도 종교적인 도전이다 보니 옛 친구 중에는 나에게만 내용을 미리 알렸던 터였다. 벌써 몇 주 전 이야기다. 당시 나는 그의 기도 부탁을 받았고, 그렇게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가끔 기도를 하며 그의 이름과 내용을 되뇌었다. 시험 당일에는 ‘파이팅’을 포함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결과가 나왔구나 싶었다. 메시지에 따르면,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에서야 놓치고 있던 다른 절차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미 접수가 마감됐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도전하게 됐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어찌 됐든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음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응원해줘서 고맙노라 ..

내 주변에는 없다.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관심사에 대해 깊이 나눌 대화 상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어떤 자연스러운 사실들이 있다. 흔히 공감대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어떤 출연자가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해보자. A그룹에 갔더니 맛있는 △△에 대한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따분함을 느끼고 B그룹으로 이동하자 멋있는 □□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C그룹에 갔더니 특정 ○○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주인공은 계속 A, B, C 그룹을 돌아다니며 대화에 껴보지만 실은 별로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적다 보니 따분한 구성의 무대인 것 같다. 공개 코미디 무대로 비유한 이유는 각각의 개인이 겪었을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익숙한 포맷으로 표현해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의 예시를 ..

PD 입봉 후 직면한 ‘결정 장애’ (창의적인 명확함이 필요한 직업)

프로듀서(PD)와 연출자 본연의 역할은 별개이지만 보통의 방송 PD는 그것을 겸한다. 프로듀서로서 기획 및 제작 총괄, 연출자로서 무형의 결과물을 유의미한 그림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외주 프로덕션의 PD였던 나였기에 그 의미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PD로 입봉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직면했던 것은 ‘결정의 어려움’이었다. 연출의 방향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정에 익숙지 않아 생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그 당시,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카메라 감독님과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음식과 풍경을 담는 촬영이었는데, 필요한 컷들의 사이즈, 앵글, 움직임에 대해 자신감 있게 설명드리지 못..

어린이날 단톡방에서 발견한 내 모습 (30대의 성장이라는 것)

어린이날 저녁.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빠들 다 고생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야기 주제였다. 서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어린이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싱글 친구들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들은 고생했겠구나 한 마디 적어둔 뒤 조용히 있었다. 문득,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좀 더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에 다녀왔다. 30대 중반인 친구들은 지금 육아에 빠져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녀가 주는 기쁨과 피로함이 담긴 일상에 대..

인터뷰 진행 중 경험한 이상 신체 증상 (내성적인 PD의 말 못 할 고충)

교양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조차 말 못 한 고충 하나가 있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한 관계로 혼자 촬영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메라를 가슴에 붙여 들고 몇 발치 앞의 인터뷰이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동안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주로 목 뒤로부터 시작하는 근육의 경직이었다. 이게 시작되면 인터뷰이와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긴장이 목덜미 위아래로 퍼지면서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카메라를 조금 높게 들어서, 액정화면 뒤로 내 얼굴을 숨겼다. 시선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증상이 완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액정 화면 속의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그 간접적인 시선만으로도 몸의 긴..

큰 착각 (조용히 지내는 삶이 주는 오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주로 혼자서 일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몇 년이 흘렀다. 그렇게 내 나름의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조용히 몇 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내 나름대로 너그럽고 온화한 성격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교회와 예배에 더 자주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나에게 주어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깨달음이 모이면서 조금씩 성숙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끔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다 보면, 요즘의 내 삶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경제적으로는 회사 다닐 때만큼은 못 할지언정,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큰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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