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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편 16~19절 / 개역개정>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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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꾸준하게 언급되는 여러가지 코드? 분위기? 주제? 그런 것들이 있다. 사람의 인생이나 정신 수양과 관련된 그런 것들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해가고 있지만...


아무튼, 오늘 말씀 속에서 한 가지 또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신다.


16절에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이게 말로 곧이 곧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구약 시대는 불로 제사를 지내는 시대였는데 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일까. 이어지는 구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며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신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야 온전한 번제가 되고 그것을 기뻐 받으신다고 하신다.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그런 주제인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행위... 그것을 하나님은 간파하신다는 말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은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어도 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무 계산 없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는 단정짓기 어렵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 같은 것도 상당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다못해 진심으로 옆자리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 조차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것. 진심으로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듯 일상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 그것이 삶 속에 이뤄진다는 사실은 예의를 차리는 지적 능력을 초월한 것이 된다. 우리는 인생에서 몇 번의 그런 경험을 한다. 가족이나 연인과 같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과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일치된 행동과 감정으로 넘치는 상태를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무엇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체험하고 느끼고 소통하는 것. 이것은 남에게 비춰질 수 없는 은밀한 나와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건이고, 예배당에 몸은 앉아 있으나 기쁨이 마음 속에 없는 상태와 같이 하나님만 아실 일인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이 개인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런 맥락에 있기도 하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증인이 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남이 내 믿음을 증명할 수도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어렵겠구나 정도로만 넘겼던 그 말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조금씩 알 것도 같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천국 백성에 합당한... 그러니까 천국을 흠내지 않을 자격있는 사람으로 훈련받은 이가 추려지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이런 상황을 깨닫게 하신 지금의 나 만으로 오늘 하루치 수업을 마친 것만 같다. 늘 함께하시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알려주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다. 하나님 오늘 점심 맛있는 것 드셨나요? 감사합니다.

Posted by C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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