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 사이 70

PD 입봉 후 직면한 ‘결정 장애’ (창의적인 명확함이 필요한 직업)

프로듀서(PD)와 연출자 본연의 역할은 별개이지만 보통의 방송 PD는 그것을 겸한다. 프로듀서로서 기획 및 제작 총괄, 연출자로서 무형의 결과물을 유의미한 그림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외주 프로덕션의 PD였던 나였기에 그 의미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PD로 입봉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직면했던 것은 ‘결정의 어려움’이었다. 연출의 방향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정에 익숙지 않아 생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그 당시,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카메라 감독님과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음식과 풍경을 담는 촬영이었는데, 필요한 컷들의 사이즈, 앵글, 움직임에 대해 자신감 있게 설명드리지 못..

위기 상황을 상상해보는 연습 (가상의 글쓰기 발표 수업)

위기 상황을 상상해보는 연습 (가상의 글쓰기 발표 수업) “다음 사람 나와서 발표해보자.” “네.” 교탁 앞에 서자 친구들이 작은 박수를 쳐주었다. 규태는 멋쩍은 듯 선생님과 잠깐 눈을 마주치고 프린트해 온 종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심호흡을 한다. “저는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듣자마자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버스기사이십니다.” 규태가 아버지의 직업을 말하자 친구들의 분주한 눈들은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규태는 머리를 한 번 저으며 발표를 이어갔다. “원래 이번 발표 과제는 어떤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작성해오는 것이었는데, 저는 너무 궁금해서 아버지께 실제로 버스에서 어떤 비상 상황을 겪으셨는지 여쭤봤습니다.” “반칙인데~.” 교실 구석에서 농담 섞인 말..

관찰자로서의 방송 연출 (동료들은 다 아는데 이제야 정리해보는 관찰의 개념)

나는 사람들의 행동,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 존경받는 희생의 이타적인 판단까지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원활한 편집을 하려면, 촬영 단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잘 담아야 한다. 어떤 ‘행동’(움직임 그 자체 혹은 의도)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처럼 컷과 컷의 작은 단계부터, 신과 시퀀스의 굵직한 덩어리까지 주제를 향한 ‘액션과 리액션’의 협응이 필요하다. 내용이나 느낌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액션만 계속 발생되는 장면의 연속은 의도된 연출에 의해서 강렬하고 특이한 느낌(주로 광고, 뮤직비디오)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삶 자체도 행동과 반응의 연속이며, ..

나이를 먹을수록 화를 참을 수가 없어요 (가득 차 버린 감정의 창고)

“나이를 먹으면서 화를 자주 내는 것 같아요.” “예전엔 어떠셨는데요?” “그게 말이죠. 화가 나도 그냥 참기만 했던 것 같아요.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어요. 아무튼, 나이를 먹으면 너그러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참기가 힘들어요.” “친구가 별로 없으신가요? 스트레스 푸는 방법 같은 건?” “별로. 남한테 제 얘기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밖에 어디 혼자 돌아다닐 데도 없고요.” “그럼 어렸을 때 친구들과는 뭘 하셨죠?” “학교도 못 마쳤는데 집안 형편이 좋질 않아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다들 스쳐간 친구들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그런 느낌으로 결혼했던 것 같아요. 가족과 떨어지려고요. 나중에 아이 낳아 기르면서 정 붙이고, 식당이..

어린이날 단톡방에서 발견한 내 모습 (30대의 성장이라는 것)

어린이날 저녁.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빠들 다 고생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야기 주제였다. 서로 자녀들의 안부를 묻고, 어린이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싱글 친구들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빠들은 고생했겠구나 한 마디 적어둔 뒤 조용히 있었다. 문득,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좀 더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방송 일을 시작한 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에 다녀왔다. 30대 중반인 친구들은 지금 육아에 빠져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녀가 주는 기쁨과 피로함이 담긴 일상에 대..

책임 없는 돌멩이

어떤 사람들은 명쾌한 것을 좋아한다. 이분법적인 질문 공세로 나를 괴롭게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조언들. 듣고 싶었던 말을 절묘한 타이밍에 만난 것 같은 순간의 착각. 언어의 명확하지 못한 성질 때문에 질문과 의심이 끝날 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뚜렷하지 않다. 온갖 미생물이 섞여 있는 한여름의 연못. 누군가 당신에게 던진 조언과 질문 속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똥을 싸고 날아가 버린 비둘기. 몸속의 호르몬은 수용체와 모양이 꼭 맞아떨어질 때만 작동한다. 스쳐 가는 조언은 분별력과 꼭 들어맞아야 효과를 발휘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조용한 폭발. 누군가, 언젠가, 언어라는 소통 수단 말고 좀 더 정확하고 직관적인 무언가를 발명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인간의 삶은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필요 ..

인터뷰 진행 중 경험한 이상 신체 증상 (내성적인 PD의 말 못 할 고충)

교양 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조차 말 못 한 고충 하나가 있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한 관계로 혼자 촬영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메라를 가슴에 붙여 들고 몇 발치 앞의 인터뷰이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동안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는 일이 생겼다. 주로 목 뒤로부터 시작하는 근육의 경직이었다. 이게 시작되면 인터뷰이와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면 긴장이 목덜미 위아래로 퍼지면서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카메라를 조금 높게 들어서, 액정화면 뒤로 내 얼굴을 숨겼다. 시선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증상이 완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액정 화면 속의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고, 그 간접적인 시선만으로도 몸의 긴..

미인대회 폐지 말고 (방송의 매력 상품화에 관한 대화)

“왜 요즘엔 미인대회를 안 하는 걸까?” “글쎄. 성 상품화 그런 것 때문에 사라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근데 나 어렸을 때 내 주변 어른들이 미스코리아 나가보라고 했었거든. 얼마 전에 그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가만 보니까 언제부턴가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 대회를 볼 수가 없더란 말이지.” “미스코리아? 으하하. 진심 아니지? 슈퍼모델 대회는 케이블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던 듯?” “야!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이런 상태고….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졸라서 화장하고 찍은 사진도 어디 남아 있을걸? 그땐 진심이었다고. 아무튼, 노골적인 성 상품화는 눈살 찌푸려지는 거니까 사라져야 하는 게 맞겠지. 근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이성에 대한 매력을 뽐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군대 꿈을 꾸었다 (접어둔 걱정을 읽고 위로를 받다)

군대 꿈을 꾸었다. 어스름한 여름 저녁.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대 복귀에 늦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부대에 도착하니 전쟁에 준하는 어떤 비상 상황이 발령되었다. 꿈이라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상급자로부터 늦게 복귀한 것에 대한 핀잔을 들었지만,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크게 혼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사용했던 개인 비품과 장구류들을 모두 버렸으니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늦게 복귀했다지만 너무 하잖아?’ 어찌 됐든 비상 상황이었고 부대는 분주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서둘러 물건을 찾으러 갔다. 도착한 장소는 쓰레기 매립지처럼 넓어서 내 물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결..

큰 착각 (조용히 지내는 삶이 주는 오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주로 혼자서 일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몇 년이 흘렀다. 그렇게 내 나름의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조용히 몇 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내 나름대로 너그럽고 온화한 성격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교회와 예배에 더 자주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나에게 주어지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깨달음이 모이면서 조금씩 성숙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끔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다 보면, 요즘의 내 삶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경제적으로는 회사 다닐 때만큼은 못 할지언정,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큰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