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 사이 70

싸게 나온 그림을 샀다 (가치 평가의 어려움과 만족)

♪ Paramore ‘Rose-Colored Boy’ “못 보던 그림이네? 선물 받은 거야?” “아니야. 내가 샀어.” “크기가 커서 그런가? 뭔가 분위기 있는데?” “유명한 작가 작품은 아니지만, 오래된 그림이라서 그럴지도 몰라.”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큰 결정 했네?” “아니야.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 내가 말했잖아 유명한 작가 작품 아니라고.” “그래도 미술품 하면 비쌀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지.” “그건 유명한 작품들이고. 요즘엔 나 같은 사람들이 구하기 쉬운…. 도태된? 그런 현대 미술 작품들이 많더라고.” “도태됐다고?” “너한테 바로 설명하려니까 그 단어가 떠오르네. 도태됐다기 보다는 시대의 선택을 못 받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이야 그게?” “이 그림은 40년..

인간과 원자의 공통점 찾기 (갑자기 분위기 도넛?)

♪ Foster The People ‘Sit Next to Me’ (창작 글입니다.) “이거 공통점 찾기 앱이라는 건데, 지금처럼 뭔가 대화 주제가 없을 때 해보면 좋은 앱이래. 단어 몇 개가 무작위로 나오면 그걸 가지고 대화하는 거야. 한 번 해볼래?” “그래 해보지 뭐.” “단어가 여러 개 나올수록 공통점 찾기가 어려울 테니까 일단 두 개부터 시작해보자.” “알았어. 그런데 예전에도 해봤어?” “아니, 너랑 하는 게 처음이야.” “뭐야 그게.” “잠깐만. 앱 실행 중이야. 나름 여러 분야의 단어가 조합될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최근에 더 추가했대.” “엉뚱한 게 나와서 맘에 안 들면 다른 단어로 다시 섞을 수 있어?” “나오는 대로 그냥 해보자. 도망칠 생각 하지 말고.” “도망이라니.” “나왔다. 원..

맨발로 도시를 걷는 방법 (문득 눈이 떠진 새벽의 충동)

♪ 아이유 ‘사랑이 잘’ (feat. 오혁) (창작 글입니다.) 나는 요즘 이상하게 새벽이면 말똥말똥 눈이 떠져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잠들곤 한다. 그날은 비 오는 밤이었다. 깨지 않았으면 비 오는 줄도 몰랐을 정도의 세차지 않은 비였다. 문득 맨발로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싶어 졌다. ‘미쳤나?’ 새벽에 눈이 떠졌을 때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뭔가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단어의 조합들이 무작위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미쳤다고 느낄 법한 생각. 맨발로 밖에 나가보고 싶다니? ‘뭐 맨발로 밖에 나가는 게 불법은 아니잖아?’ 잠옷 대신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습관적으로 신으려던 양말과 신발을 제쳐두었다. 현관 거울 앞에서 어둠 속의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우산..

계곡의 흙냄새 (기다 씨의 상담 일지 #2)

♪ Family of the Year 'Hold Me Down' “계곡에 가면 나는 흙냄새요. 고운 흙은 아니고 작은 자갈과 낙엽이 삭아서 섞인 거예요. 맑은 계곡물에 씻기면서 깨끗하고 상쾌한 냄새가 나요.” “구체적이네요.” “제가 여행을 많이 안 다녀봐서 본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향기를 꼽으라면 그 냄새예요.” “흙냄새가 좋기는 하지만 낙엽 썩은 냄새가 상쾌하다니 좀 의외네요?” “습기가 고여서 꿉꿉한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한 장소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니까 상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표현하기 힘든데 아마 그 장소에 같이 가보시면 아실 거예요.” “제가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럴지도.” “흙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지 않나요? 비 올 때 나..

아침 수영과 타임 루프

나름 부지런한 인간이 되어보자며 시작했던 ‘아침 수영’. 일곱 시에 시작하는 체조에 맞추려면 보통 여섯 시 조금 넘는 시각에 일어나야 한다. 지금은 수영하지 않는다는 어떤 선배가 말했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특히 준비와 정리가 번거로운 운동이 수영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침 수영을 다닌다. 학창 시절이나 군 생활의 내 모습에 즐거운 운동은 없다. 그래. 나는 운동에 재능이 없구나. 또래 집단은 평범하게 즐기는 활동일 뿐인데, 감각과 실력이 없으니 재미도 없었다. 그런데 수영을 배우고 생각이 달라졌다. 물속에서는 몸이 가볍고 자세가 곧아졌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폐가 열린 듯 상쾌했다. 강습이 힘들어 헐떡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 게 ‘러너스 하이’ 아닐까 싶은 활기찬 기분을 느껴보기..

사마리아인

“굿모닝!” “그래. 상쾌한 아침... 이었으면 좋겠네.” “뭐야, 퀭한 눈은? 어제 밤샜냐? 게임?” “네가 재밌다 해서 ‘배드 사마리안(Bad Samaritan)’ 엔딩 보려고 달렸지. 근데 밤 안 새웠거든?” “그거 분기별로 선택하는 게 은근 압박이던데, 행동에 따라 스토리 진행이 엄청나게 달라지니까. 그래서 엔딩은 봤어?” “어... 그럴 뻔했는데, 이제 몸이 게임을 거부하기 시작했나 봐.” “무슨 소리야?” “뭔가 3D 화면이 울렁거리더니, 갑자기 엄청 메스껍더라고.” “뭐야. 멀미했냐?” “나는 그런 거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머리가 엄청 아프더라고. 그래서 게임 끄고 바람 좀 쐴까 하고 집 앞 공원에 갔지.” “방구석 폐인의 모험 1장이 시작된 건가? 하하” “아무튼 공원에서 좀 웃긴 일..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음악

“여기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주시면 돼요.” “네. 번호 적고... 이름을...” “기다 씨?” “네?” “와. 이름 멋지네요. 이기다 씨” “네. 좀 그렇죠?” “죄송해요. 처음 보는 이름이라. 왠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등록비는 카드로 결제할게요.” “네. 그런데 어쩌다 장구 배울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요즘은 수강생도 별로 없어서 말이죠.” “그게... 저는 뭔가 즉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어서 고민이었거든요. 회사 회식이나 뭐 그럴 때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예전부터 악기 하나는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건반이나 복잡한 악기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 “그리고 예전에 라디오를 많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틀게 된 국악 방송을 한참 들었..

우울함의 광산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머릿속에 넘실대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요즘의 나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 적으면서 부족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수행의 과정인 듯하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평생 곁에 둔 친구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어렴풋하게 생겨났다. 시간을 보내며 TV 프로그램, 영화, 책 따위를 보았다.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던 중 나는 특유의 ‘우울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실의 실험군과 대조군처럼 대중 속의 나를 발견했다. 가끔은 비슷했으며, 어쩔 땐 극명하게 달랐다.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 중에서 그것이 나쁘다거나, 바꾸고 싶을 만큼 싫다거나 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의외의 선물

“자. 이거 선물이야.” “책이잖아? 뭐야. 성경이네?” “응. 너 교회 안 다니는 거 잘 알지만, 왠지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몇 권 샀는데 한 권은 네 거야.” “고맙긴 한데 갑자기 왜?” “그냥 좋은 책 선물이라고 생각해줘. 간지럽지만 소중한 사람들한테 주고 싶은 가치 있는 선물이랄까... 뭐 그랬어.” “그렇게 생각해주면 나야 좋지. 근데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거야? 이거 두꺼워서 다 읽겠냐?” “너 영화 보는 거 좋아하지?” “당연하지.” “그냥 천천히 내 얘기 들어 봐. 영화를 많이 본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면...” “갑자기 왜? 꼼짝 못 하고 들어야겠네.” “하하. 영화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상 깊은 예술 영화는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대. 절대적인..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선생님. 제가 여기 누워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꿈이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그런데 천장이 좀 삭막하네요. 아 죄송해요.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하셔서...” “...” “아. 그런데 이제 뭘 얘기하죠?” “조금씩 어렸을 때로 가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이번엔 기억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얘기해보세요.”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면...”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을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긴 해요. 기억이 나지 않으시면 그냥 어렸을 때 기억 아무거나 얘기하셔도 돼요.” “생각났어요.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병아리를 사 와서 베란다에서 기르신 적이 있었어요. 가끔 가족들이 모일 때면 거실에 풀어둔 채 놀곤 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