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 사이 70

퐈이야

“네.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아까 마지막에 대답한다고 하셨죠? 어떻게 생각이 좀 나셨나요?”⠀“아... 네. 좀 전에 인애 씨가 선물 얘기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갑자기 생각이 하나 나긴 했는데요.”⠀“드디어 말문을 여시는군요? 모시기 어려웠던 만큼 토크 주제도 과연 궁금해지는데요?”⠀“사실 별건 아닌데요... 제가 예전에 친구 100일 잔치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었는데”⠀“100일 잔치 선물 얘기군요?”⠀“맞아요. 선물을 아기 용품이 아니라 그 당시에 제가 좋아했던 인센스라고...”⠀“인센스가 뭐죠?”⠀“피우는 향의 일종인데... 동남아 같은데서 많이 맡아보셨을 거예요. 아로마 느낌 나는 피워두는 향. 우리나라에서는 절 냄새 난다고 안 좋아 하는..

인간이 될 수 없는 강아지

“왓! 깜짝이야.” “왜 그래?” “아니, 당연히 유모차 안에 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웬 강아지가 들어가 있네?” “뭐라고? 요즘 아기처럼 키우는 강아지들이 얼마나 많은데 새삼?” “그랬나? 나 이런 거 처음 봐... 근데 진짜 귀엽다. 사람 아기 같아. 똘망똘망하게 웃잖아.” “이러다가 정말 강아지들이 사람처럼 말 할 것 같지 않냐?” “뭐, 진짜 그렇진 않겠지만 강아지 업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아주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니려나.” “당연히 농담이지. 어떻게 강아지가 사람이 되겠냐.” “그렇지?” “아기랑 강아지가 똑같은 환경에 태어나서 둘 다 인간의 손에서 길러진다고 생각해봐.” “갑자기 또 진지해지네;” “둘 다 분유 먹고, 이유식 먹고 무럭무럭 자랐어. 그렇다면 둘 다 같은 지능을 가진 ..

흥미로운 학급 개인 발표 시간

수업 시간. “야, 남자들은 다 저렇게 생각해?” 학급 전원이 돌아가는 개인 발표 시간이었다. 오늘 발표하는 남자 아이는 나랑 별로 친하진 않았는데, 평소에 이반 저반 여자애들에게 껄덕대는 걸로 유명한 놈이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남자 중에서도 쟤의 특출 난 생각이라고 해두지 뭐.” 발표자가 준비한 스크린에는 땅 속에서 빠른 속도로 굴을 파며 길을 만들고 공간을 만드는 크고 시끄러운 건설 장비가 있었다. 땅을 헤집고 시끄럽게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여자들을 구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저렴한 SF영화 같은 눈물 나는 스토리네. 아무튼, 너는 안 그렇단 얘기잖아? 하하”“뭐... 일단은.” 이 수업은 매주 학급 아이들이 다 돌아가면서 자기가 나름대로 상상해온 어떤 허구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가짜가 주는 씁쓸한 행복 (양산형 복제품이 주는 행복과 슬픔)

"저 아파트 진짜 오래됐나 보다. 페인트도 벗겨지고 녹물 흐른 자국도 많고... 다시 칠하기 버거워서 그냥 두는 걸까?" "그래 이 동네가 좀 낡긴 했지. 재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난 이상하더라." "뭐가?" "외국에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반해서 한국에서 근대화되면서 지은 건물들은 조금만 지나면 흉물스러워 진단 말이야." "한국에도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도 많이 있지 않나?" "응 맞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어째서 어떤 건물은 오래될수록 멋져지고, 어떤 건물은 흉물스러워 지냐는 거지."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거 얘기해줄까?" "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었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비슷한 맥락이..

집중이 안 될 때...

"넌 집중 안될 때 뭐 해결하는 방법 같은 거 있어?" "글쎄, 커피 마시기?" "나도 커피도 마시고 바람도 쐬 보고 하는데, 영 머리가 몽롱할 때가 있거든. 가끔 음악도 크게 들어보기도 하고 말야" "그래? 음악 크게 듣는 건 뭔가 스트레스 받을 때 그렇게 하게 되더라" "그러게. 근데 어제 집에서 너무 집중 안되길래 우연히 두 곡을 동시에 틀어서 듣게 됐거든. 이어폰 꽂은 채로" "시끄럽겠는데?" "어, 엄청 시끄러운데 둘 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서 그런지 노래 하나에 집중하면 그 노래만 들리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뭔가 더 집중하게 되는 느낌이 들더라. 최소공배수? 라고 하나? 두 곡 길이가 다르니까 서로 쉬는 부분이 생기면 그때는 한곡이 제대로 들리고, 의도치 않은 새로운 효과도 생기고." "카..

사랑과 신뢰, 다음 단계

"이런 갈등 생길 거라고 어느 정도는 다 예상하고 있었잖아. 우리는 안 그럴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우리도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평범한 인간이야." "그래. 내 자신이 참 무력해지는 말이긴 한데... 웃긴게, 다시 회복될 거라는 걸 또 알고 있으니까." "응. 각자 시간을 좀 갖자... 보통 이 말이 드라마 같은 데서 헤어지자는 의미로 쓰이는데 우리한테는 좀 다른 것 같아." "알아." 사랑이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고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그 사랑이 익숙해지고, 관계의 토대가 되어 우리 둘의 발 아래에 다져졌다. 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어쩌면 사랑보다 더 강력한 관계의 끈은 신뢰한다는 감정 아닐까. 아니, 신뢰가 사랑..

지금은 사라진 맥도날드 생일파티 공간을 떠올리면서...

예전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햄버거 조리(조립)와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침 장사를 준비하는 오프닝 멤버였다. 카운터에 있으면서 일에 관련된 매뉴얼이나 본사에서 내려오는 매장 운영 관련 지침이 담긴 문서들을 보곤 했다. 언젠가 지침서 하나가 내려왔는데, 매장 한켠에 마련된 어린이들의 생일 파티를 공간에 대한 내용이었다. 요즘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 파티를 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런 용도로 마련된 공간이 있었다. 그곳을 어떻게 꾸미고 생일 파티는 어떤 순서로 진행하고, 아마도 내 기억에는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겨주면 좋은지 그런 디테일 한 내용까지 담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용 장난감도 마지막에 나눠주도록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내 기억이 워낙 오래되고 흐릿해서 사실과..

내가 살고 싶은 집

지나가다 보면, 도둑도 관심을 가지기 힘들어 보이는 볼품없는 외관의 단독 주택. 오래되어 먼지가 끼고 덩굴이 올라온 오래된 집. 하지만 내부는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인테리어 해서 그 어떤 집보다 깔끔한 공간. 공사 할 때 정성을 들여 바닥과 벽이 틀어지지 않은 집. 천장이 높아 눈이 시원한 집. 시끄럽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고, 볕이 잘 드는 위치. 차를 타고 도심에 가기 가까우면서도 물과 숲이 근처에 있어서 휴식과 약간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간. 커다란 공장이나 창고(개러지)같은 공간이 있어서 스튜디오로 활용할 수 있는 집. 에너지 제로 하우스 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열이 충분히 잘 되는 집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에 나오는 그런 진득하고 미니멀한 취향이 담겨있는 집. 낡았지만 사람의 손길이 꾸준히 닿아..

자다가 꾼 꿈도 일상의 새로움이 되는 요즘

꿈이었다. 대규모 집회가 있는 커다란 대학 강당이나 교회... 라고 하기엔 잠실종합운동장 만한 규모에 구역별로 따로 집회가 가능하면서 아래로 중앙 홀이 내려다보이는 그런 구조였다. 꿈이라서 가변적인 구조였던 것 같다. 밤이었다. 많은 사람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도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후미진 골목에서 넘어졌다.(어째서? 아무튼)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은 양 옆 복도로 길게 늘어선 어항들. 복도식 주택의 그것 마냥 좁은 길목이었다. 그 양쪽 벽면에 어항이 가득했는데, 막상 일어나서 자세히 보니 수조에는 온통 괴상한 물고기들이 종류별로 가득했다. 내 꿈에는 큰 어항이 가끔 나오는데 오늘은 특히 많았다. 물고기들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오는 ‘세스트랄’ 처럼..

세계사를 이해하는 일

나는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당연히 그에 기반한 이해도 전무하다. 예전에 대학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일부 아프리카 대륙은 어째서 가난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까?’하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나에게 돌아온 대답의 시간. 나는 다른 학생들이 말하지 않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던... 여름날의 태양이 뜨거우면 사람이 늘어지게 마련인데 아프리카 대륙의 날씨는 늘 뜨거우니 사람들이 의욕이 덜해 그런게 아닐까요? 하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장면이 생각난다. 교수님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친절하게 새로운 시각이라 좋기는 하다며 멋쩍어 하셨다. 내 기억에 그 날 교수님은 아프리카 대륙을 침략해 식민지를 세우고 사람들을 착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