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 사이 70

나를 바보로 만드는 사람 인식하기

만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내 주변에 아주 가끔 있다는 것을 ‘인식’만 겨우 한 상태라서 그 사람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더 성숙해진다면 그 어떤 파도라도 부드럽게 품는 해변 같은 사람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테지만, 유독 나의 마음을 괴롭힌 사람의 유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상 적으려니 까다롭긴 한데 굳이 정리한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행동(부추김)한다. 그런데 정작 쌓여온 감정(긍정, 부정)을 그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는데?’라고 반응한다. 잡아떼는 느낌 이상의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발견의 기회를 가진 당신은 즐거울 예정인 사람) SNS에서 보게 된(추천된) 여러 사람의 글, 만화 중에, 자기 자신의 취향 없음 또는 자기 확신 없음에 대해 아쉬워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나 또는 누군가는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나만의 취향이 엿보이는 특징적인 물건이나 옷도 없고, 자주 가는 멋진 카페나 미술관도 없으며, 남에게 추천해줄 맛집도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 작가나 글귀를 외지도 못하고 그저 밋밋하게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단지 무엇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도 우물쭈물하고, 다들 좋다길래 가봤더니 별 것 없어서 실망만 남기도 하고, 거침없이 대화를 이끄는 사람에 주눅 들어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오고, 남에게 나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보..

같은 것을 보는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속물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때,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가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동경하고 있는 그런 사람,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 위에 서 있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데 갈 길이 멀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모모의 주인공처럼 한 발짝 앞만 바라보면서 계속 청소해 나갈 뿐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단 한 번의 벼락을 맞아 달라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체험이 없는 대신, 조금씩 변화되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약하게 주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나만의 테마가 될 수 있는 글귀나 문장을 책상 근처에 붙여두고 있다. 작년에는 '몰입',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내 주변에 있다.' 이런 말..

그 토끼들이 살던 세상

“뭐야? 선물이라도 사 온 거야? 웬 쇼핑백 사이즈가 크다?” “선물? 생각 못한 걸 받은 건 맞는데...” “이리 줘 봐…. 이 지저분한 담요는 뭐냐? 토끼? 두 마리나? 너 다시 토끼 키우기로 한 거야? 근데 얘들은 이미 다 큰 거 같네?” “아니야.” “아니라고? 얘들 다 큰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내가 다시 키우는 게 아니라고. 전에 키우던 애들. 네가 봤던 토끼들이라고.” “뭐? 엄청 오래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토끼 얘기가 전혀 없었네? 처음에 블로그에 사진도 올리고 그랬잖아? “그래. 나는 왜 처음에는 엄청 호들갑 떨다가 일을 망치는 걸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얘들은 누가 돌봐주고 있었는데?” “나 진짜 벌 받아야 돼. 그냥 우리 집 베란다에서 알아서 크고 있었..

‘부럽다’ 대신 ‘대단하다’로 고쳐 쓴 메시지

신학대학교 입학을 준비해오던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 친구는 경험 삼아 입학시험을 본 상태였고, 아무래도 종교적인 도전이다 보니 옛 친구 중에는 나에게만 내용을 미리 알렸던 터였다. 벌써 몇 주 전 이야기다. 당시 나는 그의 기도 부탁을 받았고, 그렇게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가끔 기도를 하며 그의 이름과 내용을 되뇌었다. 시험 당일에는 ‘파이팅’을 포함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결과가 나왔구나 싶었다. 메시지에 따르면,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에서야 놓치고 있던 다른 절차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미 접수가 마감됐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도전하게 됐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어찌 됐든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음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응원해줘서 고맙노라 ..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칸딘스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들. 이론으로 정확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작품들(흉내내기)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과거의 양식을 복제해서 만든 작품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답과 힌트를 얻어가고 있다. 예술에 대한 그의 통찰이 시대를 뛰어 넘는다. 그는 예술을 이론화 하는데 있어서 깊은 통찰과 사유를 한 것 같다. 분석에 의한 논문 같은 느낌 보다는 경험과 관찰, 시행착오를 통한 깊은 사유의 기록 같은 책이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은 이론이 앞서고 실제가 뒤따른다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인상깊고 어려운 구절들이 많이 있으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간략히 발췌해 적어놓는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내 주변에는 없다.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관심사에 대해 깊이 나눌 대화 상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어떤 자연스러운 사실들이 있다. 흔히 공감대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어떤 출연자가 무대 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해보자. A그룹에 갔더니 맛있는 △△에 대한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따분함을 느끼고 B그룹으로 이동하자 멋있는 □□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C그룹에 갔더니 특정 ○○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주인공은 계속 A, B, C 그룹을 돌아다니며 대화에 껴보지만 실은 별로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적다 보니 따분한 구성의 무대인 것 같다. 공개 코미디 무대로 비유한 이유는 각각의 개인이 겪었을 비슷하지만 다른 경험을 익숙한 포맷으로 표현해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의 예시를 ..

‘습관성 미안함’ 가진 PD가 생각하는 ‘방송 연출’ (이제와 반성문 길게 쓴다고 잘한 것은 아니지만)

TV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경험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 다르게 일종의 ‘반성문’을 쓰게 되는 기분이다. 알게 모르게 방송 때문에 도움 주신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들이 많을뿐더러, 개인적인 성취의 부족과 시스템의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음의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작업해온 ‘방송 연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적기 전에 먼저 찾아본 사전에는 연출을 ‘대본이나 현실(팩트)을 가시화하는 작업’(영상콘텐츠제작사전 참고)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느낀 것들을 더해서 ‘방송 연출’의 뜻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보고 싶다. 「생각과 글의 내용, 느낌이나 분위기, 어떤 의도 등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개념적인 것들을 영상과 소리에 기반하..

‘눈물 편집’에 관한 부끄러운 고백 (때로는 시청률보다 출연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내가 제작했던 프로그램 프롤로그 중에 ‘눈물’로 시작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극적인 인터뷰와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한 시간짜리 영상의 시작으로 강렬한 첫 카드를 던지고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롤로그는 해당 회차의 화두를 던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만들어지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프롤로그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나열하는 하이라이트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결론을 다 지어놓고 이유를 파보는 추리 영화의 첫 시퀀스가 될 수도 있다. 형식은 파괴되고 있고, 연출의 제약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첫 장면부터 눈물을 흘리는 일반인 시청자의 모습이란…. 이제 와 다시 보니, 그것만큼 부담스럽고 보기 민..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찬송가 524장 듣기, 가사)

▼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우리를 찾는 구주 예수 곧 오라 하시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우리를 오라 하시는 말 기쁘게 듣고 순종하세구주를 믿기 지체 말고 속속히 나가세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 주 오늘 여기 계시오니 다 와서 주의 말씀 듣세듣기도 하며 생각하니 참 진리시로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