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9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음악

“여기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주시면 돼요.” “네. 번호 적고... 이름을...” “기다 씨?” “네?” “와. 이름 멋지네요. 이기다 씨” “네. 좀 그렇죠?” “죄송해요. 처음 보는 이름이라. 왠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등록비는 카드로 결제할게요.” “네. 그런데 어쩌다 장구 배울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요즘은 수강생도 별로 없어서 말이죠.” “그게... 저는 뭔가 즉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어서 고민이었거든요. 회사 회식이나 뭐 그럴 때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예전부터 악기 하나는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건반이나 복잡한 악기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 “그리고 예전에 라디오를 많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틀게 된 국악 방송을 한참 들었..

우울함의 광산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머릿속에 넘실대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인데, 요즘의 나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 적으면서 부족한 내 모습을 인정하는 수행의 과정인 듯하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나의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평생 곁에 둔 친구와 같은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어렴풋하게 생겨났다. 시간을 보내며 TV 프로그램, 영화, 책 따위를 보았다.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러던 중 나는 특유의 ‘우울함’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실의 실험군과 대조군처럼 대중 속의 나를 발견했다. 가끔은 비슷했으며, 어쩔 땐 극명하게 달랐다. 영화 '보이후드(Boyhood, 2014)' 중에서 그것이 나쁘다거나, 바꾸고 싶을 만큼 싫다거나 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선생님. 제가 여기 누워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꿈이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그런데 천장이 좀 삭막하네요. 아 죄송해요.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하셔서...” “...” “아. 그런데 이제 뭘 얘기하죠?” “조금씩 어렸을 때로 가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 이번엔 기억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얘기해보세요.”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면...”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을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긴 해요. 기억이 나지 않으시면 그냥 어렸을 때 기억 아무거나 얘기하셔도 돼요.” “생각났어요.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병아리를 사 와서 베란다에서 기르신 적이 있었어요. 가끔 가족들이 모일 때면 거실에 풀어둔 채 놀곤 했는..

사막에서 찾은 바늘

“한국에도 사막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설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포장이 조금 있긴 한데, 바다와 인접한 지형에 모래가 많이 쌓이는 곳이 있어. 사진 찍으면 사막의 거대한 사구 같아 보이는 그런 곳들 말야.” “진짜야?”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얼마 전에 여행 다녀오면서 그 해안 사구를 걸었는데, 재밌는 일이 있었어.” “야. 기대하게 하지 마. 별로 재미없는 거잖아. 다 알고 있다고.” “눈치 빠르네? 별건 아니고, 내가 그 작은 사막에서 걷는 동안 왼쪽 발이 불편한 거야. 그래서...” “신발에 모래라도 들어갔어?” “나도 그런 줄 알고 신발을 봤거든? 근데 밑창에 웬 바늘이 박혀있는 거야. 금속 핀 모양인데 조금 녹슬어 있긴 해도 끝은 부러져서 갈라진 게 영락없는 바늘이었어...

요리하는 작은 새

작은 새 한 마리가 요리를 시작했다.작은 새는 감자 몇 덩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거푸 들었다 놓는다. 수프는 끓어가고, 작은 새의 손에는 서툰 상처의 피가 멎었다.방황하던 입술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혀가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음식을 꿀떡 삼키고 날아 가버렸다. 작은 새는 식탁에 놓인 빈 그릇을 보며 말했다. “고마워” 신이 난 작은 새는 하늘에 날개를 바치는 대는 대신 요리 방법을 선물로 받았다.작은 새의 날개 끝은 오그라들고 나는 방법을 잊었다.작은 새의 이름뿐인 날개는 젖고 마르고 또 젖는다.작은 새의 상처는 그늘진 주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작은 새는 계속 요리한다. 알고 지내던 바쁜 새가 찾아왔다. “요리로 돈을 벌어 봐” 작은 새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

부끄러움의 방문

‘띵 – 동’ “누구세요?” ‘철 – 컥’ “안녕하세요. 저는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네? 뭐요?” “최근에 부끄러운 일 하신 적 있으시죠? 그것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아니... 무슨 단체에서 오신 거 같은데, 뭐 촬영하세요?” “댁이 유명인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 뜬금없이 부끄러운 일 했냐고 물으니 황당하잖아요? 아니다. 관심 없으니까 돌아가 주세요. 그럼...” “황당? 다른 얘기 해드릴까요? 혼자 잘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케케묵은 것들을 기어코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애꿎은 사람들 얼굴에 뿌렸단 말입니다. 그게 더 황당하지 않나요? 누구냐고요? 당신이죠. 직접 경고해주러 온 저를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시네요?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나요?” “아니 뭐 ..

어중간한 재능 (재능의 발견 과정과 실패. 친구와 대화 후 남겨진 생각들)

친구는 이상적인 세상과 현실 속 세상, 사회적 시스템의 부조리함 등 여러 가지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정부의 교육 슬로건 이자 그 친구가 믿었다던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세상'이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세상" 당시 힙합 음악에 심취했던 그는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녹음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업로드를 하고 나름의 순위권에도 진입했었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들려준 적은 있었어도 이렇다 할 크고 굵은 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그 당시 그런 걸 했었지 정도로 기억은 하고 있는 정도였다. 친구들은 몰랐지만 본인 나름대로는 열심을 다해 기획사에 노래를 보내 보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한다. 하지만 큰 수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2019년을 시작하는 마음 (영화 '머펫 대소동')

2019년 새해 처음으로 본 영화는 '머펫 대소동(2011, The Muppets)' 이었다. 얼핏 보기엔 어린이용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 되는 이 영화를 결제하게 된 건 에이미 아담스가 출연했다는 것, 그리고 로튼 토마토 지수와 평점이 높다는 점 때문이었다. 생각 했던 에이미 아담스의 분량은 적었지만, 2019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Life's a Happy Song'(인생은 행복의 노래야)의 주된 가사 구절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I've got everything that I need right in front of me. 부족한 실력으로 해석을 적어보자면... '나는 내 앞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어' 쯤 되려나? 일을 하면서 언제부..

영화 2019.01.05

가짜가 주는 씁쓸한 행복 (양산형 복제품이 주는 행복과 슬픔)

"저 아파트 진짜 오래됐나 보다. 페인트도 벗겨지고 녹물 흐른 자국도 많고... 다시 칠하기 버거워서 그냥 두는 걸까?" "그래 이 동네가 좀 낡긴 했지. 재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난 이상하더라." "뭐가?" "외국에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반해서 한국에서 근대화되면서 지은 건물들은 조금만 지나면 흉물스러워 진단 말이야." "한국에도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도 많이 있지 않나?" "응 맞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어째서 어떤 건물은 오래될수록 멋져지고, 어떤 건물은 흉물스러워 지냐는 거지."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거 얘기해줄까?" "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었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비슷한 맥락이..

지금은 사라진 맥도날드 생일파티 공간을 떠올리면서...

예전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햄버거 조리(조립)와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침 장사를 준비하는 오프닝 멤버였다. 카운터에 있으면서 일에 관련된 매뉴얼이나 본사에서 내려오는 매장 운영 관련 지침이 담긴 문서들을 보곤 했다. 언젠가 지침서 하나가 내려왔는데, 매장 한켠에 마련된 어린이들의 생일 파티를 공간에 대한 내용이었다. 요즘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 파티를 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런 용도로 마련된 공간이 있었다. 그곳을 어떻게 꾸미고 생일 파티는 어떤 순서로 진행하고, 아마도 내 기억에는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겨주면 좋은지 그런 디테일 한 내용까지 담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용 장난감도 마지막에 나눠주도록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내 기억이 워낙 오래되고 흐릿해서 사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