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9

내가 살고 싶은 집

지나가다 보면, 도둑도 관심을 가지기 힘들어 보이는 볼품없는 외관의 단독 주택. 오래되어 먼지가 끼고 덩굴이 올라온 오래된 집. 하지만 내부는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인테리어 해서 그 어떤 집보다 깔끔한 공간. 공사 할 때 정성을 들여 바닥과 벽이 틀어지지 않은 집. 천장이 높아 눈이 시원한 집. 시끄럽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고, 볕이 잘 드는 위치. 차를 타고 도심에 가기 가까우면서도 물과 숲이 근처에 있어서 휴식과 약간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간. 커다란 공장이나 창고(개러지)같은 공간이 있어서 스튜디오로 활용할 수 있는 집. 에너지 제로 하우스 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열이 충분히 잘 되는 집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에 나오는 그런 진득하고 미니멀한 취향이 담겨있는 집. 낡았지만 사람의 손길이 꾸준히 닿아..

교회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오늘 부활절을 앞두고 며칠 전 뉴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목회자 스스로 한국 개신교의 반성할 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홍정길 목사님이라는 분의 인터뷰였다. 한국 교회가 커지면서 목회자와 성도간의 교제가 줄어들고 영적인 인도자가 아니라 매니지먼트 관리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여러 질문과 답변중에 나에게 꽂힌 문단이 있었는데... (출처, 원문읽기 (중앙선데이 박신홍 기자 '예배는 연출, 목사는 엔터테이너 … 목회가 사라졌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353&aid=0000030041&sid1=001) 교회 모임에 나갈 때 마다 느끼는 점이 있었다. 뭔가 모임이 기쁘고 즐거운 느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것일 수도..

나도 모르게 살아온 '트렌디 라이프'

사람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다. 나 역시도 내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켜보니 내가 얼마나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가 하고 깨닫는 순간이 왔다. 그게 아마 스무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20대 중반을 보내고, 방송일을 하다가 늦게 간 학교에서 교수님들과 대화를 하며 내 삶을 돌아보고 자존감을 많이 회복하는 시기를 보냈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키워드는 내게 있어서 나 자신의 선택을 믿고 추진하는 것이었다.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듣던 나였는데, 그것은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믿음, 행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저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붙고, 평범한 삶 속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대답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친한 사람 중에 뭔가를 물어보거나 부탁하면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쩌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 번 더 물어보면 그제서야 대답을 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생각의 차이를 묻는 일 까지, 나중에 좀 지나고 반복되다 보면 왜 자꾸 다그치냐고 오히려 나에게 역정을 낸다. 가만 생각해보니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서 내가 여러번 물어야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가 왜 그렇게 설명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도 뭐 예상되다 시피 아무 변화가 없다. 나는 참 머리가 느리게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방가 나에게 왜 여러번 다그치냐고, 어째서 여러번 물어보냐고 짜증낼 때 내가 잘못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보니 그건 그 사람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기에 ..

이상형이 없어요

친구와 얘기하다보면 가끔 나오는 화제, '이상형' 문득 친구가 내 이상형에 대해서 물어보자, 나는 딱히 정리된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하고 만다. '뭔가 말로 잘 정의하지 못하겠다.' 이상형이라고 정하는 것이야 외형적인 어떤 한 부분이나, 성격적인 어떤 한 부분을 정해놓는 것 정도일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상형의 한 부분이 맘에 드는 사람일지라도 여러가지 그 사람의 분위기와 행동 등 많은 요소들이 매력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형이라는 말 자체가 뭔가 맞지 않는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차가 있는것일 뿐이다. 누군가는 어떤 한 포인트에 매력을 느껴서 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냥 몇 번 겪어보다가 매력을 느끼면 그 사람 그대로의 색깔을 좋아하게..

'겸손하다'의 정의

사전적인 정의가 내려진 무수한 단어들이 있지만, 가끔씩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단어들이 있다. ‘겸손하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전에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라고 되어있다. ‘겸손’ 혹은 ‘겸손하다’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나에게는 비슷한 듯 다른 여러 가지로 느껴지기에 잠시 적어보고자 한다. 아주 예전에 누구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겸손이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다. 맞는 듯 하지만, 나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정의였다. 자랑하다가 망신당하는 것 보다는 조용하게 있다가 나중에 빛을 발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겸손 보다는 대인관계에서의 예의 같은 조금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무튼, ..

골목에서 만난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영업 기술

골목에서 만난 야쿠르트 아주머니. 문이 열려있는 단독주택 대문 앞에서, 마당을 청소중인 집주인에게 뭐라뭐라 하고 계신다. 김장철이 다가오는데 절임배추를 사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야쿠르트에서 배달 요리 판매를 해서 하는건지, 따로 영업 루트가 있으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집주인은 듣는둥 마는둥이다. 나는 요구르트 몇 개를 살 생각으로 카트 앞으로 다가갔다. 물건을 사겠다는 눈인사를 건네자 아주머니께서 집주인에 대한 영업을 접고 돌아온다. 나는 필요한 것 다섯개를 주문한다. 아주머니는 물건 담을 봉지를 꺼내면서 기왕이면 열 개를 사라고 권유한다. 나는 그렇게 많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한 번 더 열 개를 사라고 권유한다. 나는 다섯개만 달라고 다시 말한다. 아주머니는 더이상 말 없이 다섯개..

[NDSL - 닌텐독스] 잊었다가도 가끔씩 켜보게 되는 너란 강아지...

책장에 놓아두고 2~3주 정도 마다 한 번씩 켜보는 구형 NDSL의 닌텐독스... 어쩌다 켜도 잘 버티고 있는 녀석. 너무 안 켜면 집을 나가기도 한다는데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버텨주고 있다. 뭔가 힘든지 꼬질꼬질한 몸에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힘 없이 엎드려있다. 깨워서 물 먼저 주고, 밥 주고, 씻기고, 공 두어번 던져주고, 이름을 불러 공을 가져오면 머리를 좀 쓰다듬어 주다가 혼자 노는 뒷 모습을 보면서 저장하고 종료한다. 매번 이게 뭐 하는건가 싶으면서도 가끔 켜서 보살펴보게 된다. 딱 한 마리만 키우고 있고, 훈련도 더 이상 시키지 않고, 대회도 나가지 않고 있다. 있는 돈으로 사료와 용품 몇가지만 계속 사면서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인데 사람은 왜이리 화면 속 강아지를 측은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