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5

섭리적 우연

“너는 오페라나 뮤지컬, 클래식 공연 같은 거 보러 간 적 있어?” “회사에서 문화생활하라면서 단체로 보내고 그랬는데, 나는 취향이 아니라서 안 갔어. 근데 왜?” “요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주식도 모르고 골프나 스키 같은 것도 탈 줄 몰라. 카지노에 가본 적도 없고, 번지점프를 해본 적도 없지. 뭔가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내가 아는 세계보다 모르는 세계가 더 많은 기분이었어. 그런데, 내가 몇 년 전부터 큰 맘먹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한참 재미를 느끼면서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그동안 내가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수영은 왜 재밌는 걸까?” “수영이 맞았나 봐?” “응. 학교 다닐 때부터 축구나 농구, 족구, 심지어 탁구 같은 구기 종목은 ..

살인자의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살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말을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어이없어서 화가 났어요.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그게 그렇게 피해자와 가족들로부터 쉽게 용서받을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아…. 그건 말하기 쉬운 얘긴 아니지만….” “그 뻔뻔함에 대해서 인정하겠다는 건가요?” “당신이나 저, 그 가해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한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이뤄온 생각과 그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었어요. 그 대답이 나오게 된 과정을 공유하고,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 살인자를 저와 비슷하게 취급하진 말아..

세대교체를 본다

골목에서 한 남자를 봤다. 바퀴 달린 끌차에 낡은 통돌이 세탁기 한 대가 실려있다. 한쪽 팔로는 세탁기, 다른 팔로는 끌차 손잡이를 밀고 있었다. 전자제품 회사의 것으로 보이는 유니폼과 상황으로 보아 아마도 새 제품을 누군가 주문했고 헌 제품을 수거하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 참 어려 보이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그냥 지나칠법한 일상에서 문득, 그 주인공이 어려 보인 다는 것을 두드러지게 느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마주쳤던 택배 기사나 편의점 점장. 크고 작은 가게와 중소기업의 대표까지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훨씬 어린 사람들로 바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가게를 하나둘 차려서 창업하거나 회사에서 진급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등, ..

시계 속의 코로나(비상이 일상화 되어가는 시간)

새벽에 눈을 떴는데 멀리 전자시계에 '코로나'라고 쓰여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됐나?' 잠결에 잘 못 본 거였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새벽 3시 24분이었다.전자시계라서 이렇게 표시된 것인데, 다시 보니 '코로나'라는 글자와 닮았다.나는 다행히 '코로나19' 때문에 크게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은근 신경 쓰이는 문제였나보다. 많은 분들이 비상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모두에게 감사하고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내가 아니라는 말

'지금 이 모습은 내가 아니야.'라며 상황에 젖어있을 때가 있다. 화가 나서 잠시 이성을 잃었을 때. 반복되는 일상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때.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아픈 나머지 의욕이 사라졌을 때. 큰 상실 때문에 우울함에 빠졌을 때.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낯선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속의 나는 여전히 나이며 다른 그 무엇이 된 적이 없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누군가는 악하게 변한 상대에게 지금의 악한 모습은 원래의 네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다. 나이를 먹어서 신체적 정신적 문제에 직면하고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거나, 아..

잡혀온 아이들

"애한테 얘기했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거부하고 여기서 시간을 벌자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위한 수용소가 있습니까?" 학생 A가 일어났다. 관찰 선생은 그의 행동을 기록했다. 호텔 방에는 지난밤, 골목 구석에 숨어서 작은 일탈을 하던 아이 여럿이 잡혀와 있었다. 지금 이 방에는 상관없는 또래 아이들과 그의 엄마로 여겨지는 사람도 보였다. 그저 교복 입은 학생들이 단체 여행 왔다고 여길법한 모습이었다. "아이 성적 때문이에요. 일부러 잡혀와서 시간을 끌려고 일탈 학생인 척하기도 하죠. 편법이긴 하지만..." 한 여성이 말했다. "저는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아요. 예전처럼 최루탄도 화염병도 없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저항을 떠올리면서 일종의 안전함 속의 작은 거부를 표시하는 거예요. 이런 레지..

나를 바보로 만드는 사람 인식하기

만나기 싫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내 주변에 아주 가끔 있다는 것을 ‘인식’만 겨우 한 상태라서 그 사람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나중에 내가 더 성숙해진다면 그 어떤 파도라도 부드럽게 품는 해변 같은 사람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갈 테지만, 유독 나의 마음을 괴롭힌 사람의 유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상 적으려니 까다롭긴 한데 굳이 정리한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행동(부추김)한다. 그런데 정작 쌓여온 감정(긍정, 부정)을 그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때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는데?’라고 반응한다. 잡아떼는 느낌 이상의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

무색무취한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발견의 기회를 가진 당신은 즐거울 예정인 사람) SNS에서 보게 된(추천된) 여러 사람의 글, 만화 중에, 자기 자신의 취향 없음 또는 자기 확신 없음에 대해 아쉬워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나 또는 누군가는 당장 내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나만의 취향이 엿보이는 특징적인 물건이나 옷도 없고, 자주 가는 멋진 카페나 미술관도 없으며, 남에게 추천해줄 맛집도 알지 못한다. 좋아하는 작가나 글귀를 외지도 못하고 그저 밋밋하게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단지 무엇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도 우물쭈물하고, 다들 좋다길래 가봤더니 별 것 없어서 실망만 남기도 하고, 거침없이 대화를 이끄는 사람에 주눅 들어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오고, 남에게 나는 줏대 없는 사람으로 보..

같은 것을 보는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속물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때,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가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동경하고 있는 그런 사람, 흔들리지 않는 주춧돌 위에 서 있는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데 갈 길이 멀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모모의 주인공처럼 한 발짝 앞만 바라보면서 계속 청소해 나갈 뿐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단 한 번의 벼락을 맞아 달라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체험이 없는 대신, 조금씩 변화되는 나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약하게 주어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해가 되면 나만의 테마가 될 수 있는 글귀나 문장을 책상 근처에 붙여두고 있다. 작년에는 '몰입', '내게 필요한 것은 이미 내 주변에 있다.' 이런 말..

찬양 '약한 나로 강하게' 가사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 날

교회에서 2020년 새해를 맞아 부흥회를 열고 있다. 목사님의 말씀이 정말 좋다. 부흥회에 초청되어 오시는 분들의 말씀이 특히 인상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분들이 가진 주제나 이야기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 그러니까 인생에서 겪었던 가장 특징적인 직간접적 경험들을 농축(?)해서 전달해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에 대한 주제로 그렇게 많은 에피소드들이 나올줄 몰랐고, 특유의 입담과 깊고 개인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부흥회를 다녀오면서 주제와 상관 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찬양이 있었다. ▼ 약한 나로 강하게 이 찬양의 가사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는데, 아주 오랫동안 들어온 이 찬양의 가사를 왜 불과 어제까지는 그 깊은 뜻으로 알지 못했나 싶다. 찬양 가사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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